노래 일기 열하나
2017. 9. 6 수
“여태껏 본 중에 제일 잘하시는데요?ㅎㅎ”
연습을 많이 해서 칭찬받을 것을 예상하고 간 날 오히려 지적을 많이 받기도 했었는데, 연습을 거의 하지 않은 이번 주에 노래 수업 시작이래 최고의 칭찬을 듣게 되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노래가 잘 안 되면 제가 집중력이 엄청 떨어져요. 잘 못하고 연습이 제대로 안 되어있고, 그러면 제가 봐줄 게 없는 거예요. 지난 주하고 똑같으면 나도 매번 똑같은 걸 지적하고 있자니까 능률이 안 올라요. 근데 앞에서 막 (잘) 하면 집중력이 엄~청 높아져요. 봐줄 것들이 많아지고 저도 욕심나는 게 생기니까. 근데 오늘은 집중이 엄청 잘 되네요.^^
사실, 이번 주에 노래 연습은 별로 안 했다.^^ 하지만 많이, 진~짜 많이 들었다. 이러다 귀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들은 게 10번이라 하면, 부른 건 2~3번일 정도로, 듣는 데 비중을 많이 두었다. 배운 노래라 해도 막상 혼자 하려 하면 선율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충분히 듣고 익혀두어야 겨우 소리가 흘러나온다.
큰 선율을 익힐 땐 집안일하면서도 듣고, 밥 먹으면서도 듣고 그냥 편안하게 듣는다. 큰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나서 좀 더 세부적인 소리가 궁금할 땐 녹음된 선생님의 소리를 듣고, 일시정지를 누른 뒤 그 부분을 따라 해 보고,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도 해 보고, 다시 돌려 듣기도 하면서 공부하듯이 듣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시간이 쌓이다 보면 연습 초반에 들리지 않던 미세한 떨림이나 숨어있던 짧은 음정들이 갑자기 들릴 때가 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그렇게 불러주셔도 잡히지 않던 암호 같은 소리들이 내 귀에도 들리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꼭 보물찾기 같다.
하지만 한여름에 가만히 앉아서 듣는 일에만 집중하는 건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내 하루의 일정 부분을 노래 연습시간으로 떼어놓을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다가 계획대로 안 될 경우엔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서 ‘한꺼번에 왕창보다는 10분을 해도 자주 하자’ 정도로 노래를 느슨하게 풀어두었다.
대신 걸으면서 듣기로 했다. 일부러 안 하던 일을 만든 건 아니고 좋아하는 걷기에 노래 연습을 얹은 것이다. 걷는 걸 좋아하니까 걷는 만큼 더 듣겠지 싶어서. 평소엔 우리 집 앞 공원이나 집 근처 지하철 역까지 걸었고, 좀 더 여유가 될 땐 청계천 산책로를 걸었다. 집에서 청계천까지는 가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가는 시간 또한 듣는 시간이라 별로 힘들지 않았다. 여름 내내 거의 1주일에 2.5회는 간 것 같다. 청계광장에서 시작해서 성동구의 살고지 공원 근처까지가 6.9km인데, 지금까지 배운 초한가 가사와 선율은 이 길을 오가면서 외웠다.
나의 초한가에는 청계천 물길이, 물길에 비친 키 큰 건물들이, 또 시장의 간판들이, 수표교, 베오개다리, 황학교 등등의 수많은 다리들이, 나처럼 여름 저녁을 걷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스며있다.
연습이 잘 된 날, 그렇지 않은 날... ‘지금까지’의 노래들이 쌓여서 ‘오늘’의 노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