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선을 그려 보다

노래 일기 열여덟

by 솔초

2017. 11. 17 금

가끔 산을 오르다 ‘그냥’ 멈출 때가 있다. 그리고 가만히 주변의 것들에 귀를 기울여 본다. 미세먼지가 ‘나쁨’이거나 오전에 비나 눈이 올 때, 평일이거나 남들이 하산할 시간대에 오르게 되면 온 사방이 조용하다 못해 적막해지고, 내 시야가 닿는 곳 어디에도 사람의 기척이 안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럴 땐 무서워서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하는데, 대신 주변이 떠들썩할 때는 들을 수 없는 여러 소리들을 들을 수가 있다.


그냥 ‘바람소리’였던 것들이 마른 나뭇잎들이 바람에 뒹구는 소리, 가늘고 여린 나뭇가지들끼리 맞닿아서 나는 소리, 센 바람에 나무줄기가 휘청일 때 나는 소리, 내 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 나뭇잎이 공중으로 모래랑 먼지랑 함께 날아갈 때 나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등 여러 소리들로 들려온다. 나뭇잎끼리 맞닿을 때도 한두 번 부딪히다 말 때도 있고, 나뭇잎들이 가루가 될 것처럼 연속적으로 부딪힐 때도 있다. 작은 나뭇잎이 부딪힐 때랑 손바닥만 한 애들이 부딪힐 때랑은 소리의 톤도, 미세하지만 크기도 다르다.

그냥 바람소리였던 것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다른 소리들로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서도민요를 배우면서 ‘잡히지 않는 소리들을 잡아보려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


수심가 2절의 가사는,

아아아하아아아~(작은 글씨의 ‘아아아’는 ‘하’에 붙어서 짧게 떠는소리이다)

강산 불변 봉춘(江山不變再逢春)

임은 일거(一去)에 소식이구나.

생각사사로 세월 가는 것 달아 나 어이 할까요.


밑줄 그은 ‘재, 이, 무, 로, 사, 등’은 음이 같다. 근데 이 음이 내 귀에는 ‘여러 소리가 섞인 듯한 하나의 소리’처럼 들렸다. 당연히 소리 내기가 어려웠다. 내 느낌대로 이 소리를 설명해 본다면 ‘재’는 주된 음(音)의 '재'와 부수적인 음(音)의 '재',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소리의 느낌은 주된 음이 ‘평지’ 다면, 부수적인 음은 ‘내리막길’ 같다.(배우는 입장에서 이 소리에 대해 이렇게 느낄 수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시고, 각자의 느낌대로 상상을 해 보시길 바란다.^^) 이 두 음이 묘한 느낌으로 만나서 하나의 소리가 되는데, 이 소리의 길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약간 붕뜬, 멍한 상태로 소리를 내게 된다. 표정까지도 멍해진다고 해야 하나? ㅎ 하지만 ‘민요는 듣고 따라 하는 게 먼저’라는 선생님 말씀처럼 그 음의 주소를 궁금해하기보다는 몸으로, 느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답답해서 가상의 선을 그려 보았다. 지금 내 입에서 나온 소리가 직선으로, 수평으로 뻗어나간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으시고 선생님이 “낮아요” 하시면 내 소리의 선보다 1mm 정도 올려 내본다는 생각으로 소리를 살짝 올려서 내보고, - 실제 소리가 올라가는지는 잘 모르겠다 - “높아요” 하시면 다시 1mm 정도 낮게 낸다는 생각으로 지그시 내려서 내 본다. 그리고는 ‘소리가 떴어요’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다. 떠 있다고? 그럼 좀 눌러야 되나? 알 듯 말 듯한 느낌의 소리들이 눈앞에 둥둥 떠다닌다.


가수 박정현 씨가 노래할 때면 마이크를 쥐지 않은 쪽의 손이 위아래로 섬세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에는 그 사람만의 노래하는 습관이겠거니 했는데, 지금은 박정현 씨가 그 음 하나하나를 만지면서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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