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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an 13. 2019

'전지적 엄마 시점'으로 관찰한 날

20180520 

먼저, 풀어야 할 수학 문제의 분량을 확인한다. 아이 얼굴에 그늘이 진다. 짜증 섞인 한숨도 나온다. ‘부등식의 해와 그 성질’에 대한 문제 10페이지가 이번 주 과외 숙제다. 일주일 숙제로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한꺼번에 하자면 ‘힘들다’ 할 수도 있는 분량이다.

내가 내 준 숙제도 아니건만 아이의 원망, 짜증, 푸념은 늘 나의 몫이다.('하기 싫다'가 아니라 '힘듦을 알아달라'는 응석이다) 

그러면서도 ‘안 해.’라는 말은 절대 안 한다. 하기는 하는데 ‘하나도 급하지 않아.’ 하는 느낌을 일단 내게 전달한다. 잘 모르는 문제를 푸는데, 휘파람을 불고 앉아있다. 등을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느긋하게 있기도 한다. 발을 까딱까딱하거나 등, 머리, 발 등을 긁적긁적하면서 부산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딱히 가려워서라기보다는 집중을 거부하는 동작, 혹은 나름 여유로움을 드러내는 동작으로 해석된다. 등은 C자 모양으로 둥글게 말아서 최대한 피곤을 유발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한다. 구부정한 체형을 만드는 데엔 최고이지만, 효율과 집중엔 최악이다.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부 접근 과정'을 보고 있자면 나의 멘틀은 ㅠㅠ 


드디어 문제를 풀기 시작한다. 틀린 문제와 몰라서 못 푼 문제는 ‘질문’이라고 써두고 넘어간다. 푼 문제와 질문 문제의 분량이 비슷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하지만 할 수 있는데 ‘생각’ 하기 귀찮아서 질문으로 남긴 문제들을 나는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다. 

‘질문’이라는 순박한 이름을 달고 아이 것이 되지 못한 채 떠나 가버린 문제들을 숱하게 보아왔다. 그 뒤로 내게 질문이란 ‘더 이상 해 볼 것이 없을 때, 엄마도 모를 때, 인강으로도 안 될 때 하는 것’으로 정리해 두었다.

‘질문’이 될 뻔했던 문제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고, 쉬운 문제라도 스스로 해결했을 때, 오답이 적은 페이지가 나올 때, 공부 태도가 딴 사람처럼 달라진다.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거의 없고 신기하게 자세도 좋아진다. ‘한걸음 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는 “머릿속이 시원해”라고 말하면서 짧은 순간이지만 즐거워하기도 한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심장 박동도 살짝 빨라졌을 것이다. 다음 문제를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본다. 


집중모드까지 오는데 한 시간, 어떤 날은 두 시간이 걸린다. 오는 과정이 평화롭지만은 않지만,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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