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초 Jan 13. 2019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한 날 1

20181027

패딩점퍼에 머플러까지 두르고 나선 산책길, 아이 학교 앞을 지나다 보니 철제 울타리 사이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마침 축구하러 나간 아이 생각이 나서 슬쩍 들여다보는데, 입고 나간 점퍼는 어디다 두고 반팔 차림으로 뛰고 있었다.

그것도 가지고 있는 셔츠 중에 가장 얇고 통기성이 좋은, 여름 햇빛 1시간이면 뽀송뽀송하게 건조되는 겨자색 반팔 티셔츠 한 장만 입고...

긴팔 입은 열댓 명 아이들 틈에서 내 아이만 유독 추워 보였다. 옷을 입으라고 전화나 문자를 할 수도 있지만 축구하다 말고 친구도 아닌 엄마의 전화나 문자를 확인할 아이가 아님을, 나는 다수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겨울, 졸업여행에서 돌아온 아이를 학교 앞으로 마중 나갔다가 엄마인 나를 외면하는 아이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아직 남아있는 졸업여행의 여운을 친구들과 선생님과 더 누리고 싶었고, 선생님과 친구들 앞에서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서 조용히 여행을 곱씹으면서 서서히 귀가할 참이었는데, 느닷없이 강아지까지 안고 등장한 엄마가 반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혹시 아이가 부끄러워할까 봐 멀리서 손을 흔들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돌렸다. 다른 아이들이 부모랑 귀가하는 것을 보고도 아이는 그대로였다. 옆에 있던 담임선생님이 왜 엄마한테 안 가냐고 해도 아이는 끝내 나를 따라나서지 않았다. 서운함보다 정말 창피함이 더 컸고, 아이의 성장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었다.


그 뒤론 아이의 행동반경 안에 사전 동의 없이, 절대, 불쑥,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사전에 동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이의 사생활 영역에 들어갈 일은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몰래 훔쳐볼 뿐ㅋ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세요?" 하게 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