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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an 13. 2019

이제는 내 차례인 날

20181111 

“어제 끓인 어묵탕 남은 거 아버지가 국물도 안 남기고 아침에 다 드셨다. 점심땐 감자수제비 해 드렸고, 저녁엔 갈비 재워 둔 거 먹으면 된다.” 

아이가 내게 단어도 외웠고, 수학 문제도 풀었다고 자랑할 때와 비슷한 말투이다. 엄마의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웃고 계신다. 어제 이른 아침, 집에 막 도착했을 때의 찌푸리신 표정은 멀리멀리 도망간 듯했다.


내가 두고 온 반찬들보다 오랜만에 본 손자의 한 마디, 

“할머니 아프시다더니 괜찮아요? 병원에 일찍 가셨으면 좋았을 걸, 늦게 가셔서 고생하시잖아요.”

엄마는 이 말을 곱씹으면서 오래오래 행복해하셨다. 


그런 말씀 잘 안 하시는 아버지까지도,

“네가(아이) 와 준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엄마(나)가 가자고 해도 네가 안 오려고 하면 안 올 수 있는데... 와줘서 고맙다.” 


내가 효도를 하고 있다거나 효도를 해야지 생각한 것은 아니다. 20년쯤 전에 앞으로 부모님과 내가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 적이 있는데, 부모님의 기대 수명에 비해 나와의 시간이 턱없이 적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기준으로 30년쯤 더 사신다고 해도 나와 보낼 수 있는 기간은 몇 개월뿐이었다. 

앞으로 부모님이 10년쯤 더 사신다고 해도 나랑 같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외식 배달 거의 없이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어른이 되었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이제는 내 차례이다. 혹은 내 언니, 동생의 차례일 수도 있다. 내게 부모님이 언제까지 기회를 주실지 모르지만 엄마한테 받은 밥상을 자주 돌려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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