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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초 Jan 13. 2019

부모와의 시간을 누리는 날

20181110

"도대체 약을 몇 가지나 드시는 거야?"
하고 물으면  대답 대신 엉뚱하게도 아버지를 향해,
"거기 오메가쓰리 한 병 쥬쇼~"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질문은 듣기도 전에, 엄마의 귓가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귀가 나쁘신 탓에 아버지와의 대화는 두세 번의 확인이 오가고서야 완성되기도 한디.
"○○형 방에 휴지가 많았대요."
"☆☆이 방에 가서 자라."
"아니 ○○이 방의 바닥에 휴지가 많았다고요. "
사촌 형 방에 휴지가 많더라는 아이의 얘기를 내 아이가 방에 가서 쉬고 싶어 한다는 말로 알아들으신 것이다.
 
"짐 빠짐없이 챙겼어?"
"딱히 챙길 짐도 없어.  매고 온 가방이 다야."
"짐 다 챙겼어?"

엄마는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하신다.  내 말을 아예 듣지 못했거나, 듣긴 했지만 못 알아들었거나, 어쩌면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잊고 한 번 더 물으셨을 수도 있다.

나이 든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인내심이 필요한 일임을 갈 때마다 느낀다. 극장처럼 쩌렁쩌렁 울려대는 아버지 전용의 TV음량을 견뎌야 하고,  엄마 취향의 죽 같은 밥에 카레를 부어먹어야 한다.

지인의 딸 결혼식에 다녀온 얘기는 뉴스의 기획기사처럼 자세하게 다뤄진다. 피로연장에서 드신 고기의 종류와 양까지 말씀해주실 정도로...  나는 기꺼이 아버지 일상의 비중 있는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한다.

자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이미 오래전부터 TV가 대신해 오고 있지만,  부모님과 TV와 내가 종일 같이 생활하는 것은 힘들다. 자식인 나보다 내 부모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TV의 소음이, 어쩌다 찾아오는 자식은 힘들다.  '소리 고문' 같다. 

허리가 아픈 엄마와, 그런 엄마와 매일 병원에 다니시는 아버지께, 밥을 차려드리려고 새벽같이 달려왔지만,  밥보다는 소음이,  도대체 이어지기 힘든  대화들이 나를 지치게 하는 날이었다.

기차가 수서역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전혀 다른 지점의 생각이 내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익산역에서 수서역까지 오는 1시간 20분 동안 그저 일기를 쓰고 있었을 뿐인데, 내 생각이 쓰인 나의 하루 일기를 읽고 읽으면서 고치던 것뿐인데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알아야 할 것을 내 힘으로 알아내게 되었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티브이도 보시는 거고, 초점이 어긋나지만 대화도 할 수 있고,  결혼식장도 병원도 자식들 도움 없이 다니실 수 있는 거잖아? 두 분이 누구의 도움 없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체가 존경스럽고 감사한 일 아닐까?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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