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으로

삶이 담긴 헌책방

by 김준호

나의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광고쟁이로서 그리고 글쟁이로서 살아온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엮여 나올 것이라 믿었다.

스무 해 동안 글자로 먹고산 사람이니, 첫 문장쯤은 어렵지 않게 써 내려갈 수 있으리라 여겼다.


막상 책상 앞에 앉자 첫 줄조차 쓸 수가 없었다.

다이어리에는 문장들이 빼곡했다. 메모처럼 남겨둔 생각들, 언젠가 쓰일 것이라 믿었던 문장들. 하지만 그것들은 하나의 글이 되지 못한 채 제각기 흩어져 있었다.

서로 이어지지 못한 문장들은 오히려 나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광고인으로 산 20년이 나를 작가로 화려하게 태어나게 하리라는 기대는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무엇이 부족한가. 내 손에서 태어난 글자들은 언제나 광고주를 만족시켰고, 재치 있는 카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그런데 왜 그 이상의 글은 나오지 않는가?.

문학적인 글과 상업적인 글이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다. 읽으면 쓸 수 있으리라, 독서로 부족함을 채울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깨닫는다. 내가 쌓아온 것은 문장이 아니라 용도였고, 익숙해진 것은 글쓰기가 아니라 설득이었다는 것을.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글쓰기는 진척되지 않았다. 문제는 글만이 아니었다.

생계 역시 함께 멈춰 서 있었다. 내 글을 쓰면 팔릴 것이고, 그로써 생활은 자연히 이어지리라 여겼다. 현실은 달랐다. 다시 돌아가는 최악의 상황만은 만들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다짐했다.

ai생성


그날도 문득 책이 보고 싶어졌다.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보고 싶어서였다. 이미 출판되어 누군가에게 읽힌 책들. 어떤 책은 수많은 손을 거치며 작가에게 이름을 남기고, 어떤 책은 출간과 동시에 잊힌다. 새 책의 잉크 냄새보다 헌책방의 먼지와 손때가 묻은 책들이 왠지 더 마음에 들었다.

집 근처에 허름한 헌책방이 하나 있었다.

주인은 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책상에 앉아 책에 색인표를 붙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책장 사이로 들어갔다. 손에 닿는 대로 책을 집어 들고,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헌책 특유의 종이 냄새였다. 서너 권을 그렇게 반복하다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종이 냄새랑 먼지 냄새가 좋으신가 봐요?"


"아, 네."


민망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책장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헌책이라 부르기 민망한, 지난달에 출간된 책들이 꽂혀 있었다. 같은 작가의 책이었다. 아마도 나처럼 작가의 꿈을 안고 글을 썼고, 책으로 묶였지만 읽히지 못했을 것이다.

인쇄된 종이로 남았을 뿐인 글들.

어쩌면 저것이 나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곳에서 내 미래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첫 문장조차 써내지 못하는 나보다 저 책의 작가는 이미 작가였다.

다시 책 냄새를 맡으며 시선을 옮기다, 책장 모서리에 붙은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폐업 세일 40% 개인 사정으로 책방은 이번 달 말까지만 영업합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정말 그만두시는 건가요?"


아주머니는 돋보기 너머로 나를 바라보았다.


"큰아들이 미국에 있어요. 평생 헌책방 하면서 대학 보내고, 유학 보냈더니 거기서 교수로 자리를 잡았대요.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하네요. 혼자 사는 것도 괜찮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자식이 더 그리워지더라고요."


"그럼 이 책방은… 인수할 분 없이 그냥 정리하시는 건가요?"


아주머니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즘 누가 헌책방을 하겠어요. 그냥 정리해야죠."


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빨리 입이 열렸다.


"혹시… 이 책방을, 저에게 넘겨주실 수 있을까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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