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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Dec 10. 2019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낯선 운명 이야기

에디터 SU의 쉐어컬쳐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영화는 한정되어 있는 개인의 삶의 범위를 간접적으로나마 넓혀주는 것 같아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인지하게 되는 것.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낯설게 하기> 기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면서 더욱 그렇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만의 60년 대 배경을 그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학교, 그리고 음악까지 과거의 내 기억 속 어딘가를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살아왔던 환경과 영화 속 시대 환경이 어느 지점은 분명 맞닿아 있다고 느꼈는데요. 이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투, 미움, 사랑, 분노 등 보편적 감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쟁 이후 중국 대륙을 떠나온 대만의 시대적 배경과 분단국가인 대한민국과의 묘한 동질감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타이페이 스토리>때 잠깐 소개해드렸는데요. 며칠 동안 계속해서 눈에 밟힌다고 해야 할까요? 극중 주인공인 샤오쓰 (장첸 분)의 건조한 표정이 계속 생각나서 아무래도 포스트에 올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에드워드 양' 감독의 작품으로 1991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1961년 대만에서 최초로 일어났던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요. 한국에는 2017년 그러니까 26년 만에 최초 개봉한 작품입니다. 러닝타임이 237분, 정확히 3시간 57분짜리 영화인데요. 국내 개봉했을 때에는 1부, 2부 나눠서 상영했고, 중간에 10분 쉬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과 관찰자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련된 연출과 감각적인 영상미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한 장면 한 장면이 치밀한 복선과 상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대만 뉴웨이브 영화들의 특징으로 볼 수도 있는데요. 이번에 다시 영화를 보면서 미처 놓쳤던 새로운 의미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특히나 수식어가 많이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꼭 봐야 할 영화를 소개하는 도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BBC가 1995년에 선정한 <21세기에 남기고 싶은 영화 100편>에 유일하게 대만 영화로 선정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발표된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0>의 Top10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영화제, 언론, 평론가들에게 영화사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기도 합니다.









<키네마 순보가 선택한 90년대 최고의 외국영화는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






영화 러닝타임이 길어서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놓칠 수도 있는데요. 여주인공인 '밍'(양정이 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밍' 중심으로 '소공원 파'와 '217파' 조직 간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데요. 양 조직은 여러 이권을 가지고 대립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밍'을 차지하기 위한 보스 간의 다툼에서 시작됩니다.










'소공원 파'의 보스인 '허니'는 '217파' 보스를 죽이고 ‘밍’을 차지하지만, ‘217파’ 후임 보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217파’ 역시 ‘소공원 파’ 조직원들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해 많은 조직원들이 죽게 되는데요. '소공원 파'가 '217 파'를 기습적으로 공격해 복수하는 장면은 왜 이 영화가 현시대를 관통하는 위대한 작품인지 명확히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샤오쓰'의 아버지가 이념 문제로 보안사에 잡혀가 고통을 당하는 장면이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들이 나오는 장면, 서부 영화의 카우보이를 따라 하는 장면 역시 한국의 특정 시대와 너무 닮아있어 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요. 결국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에 치닫게 됩니다. 혼란과 불안이 증폭되어 있던 대만의 시대적 상황은 잠재적 폭력이 폭발하기에 이릅니다.










'샤오쓰'는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한순간,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는 순환과 소유를 생각했습니다. 순환은 선순환과 악순환이 있지만, '샤오쓰'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악순환이었던 거죠. 사랑하는 '밍'을 소유할 수 없다는 악순환. '밍'과 엮인 사람들 간의 다툼, 죽음. 소유할 수 없다면 사라지게 하는 게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샤오쓰'는 생각합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1991년에 홍콩 개봉 당시에는 레이저 디스크 복사본으로 출시해서 좋지 못한 화질로 밖에 볼 수 없었다고 해요.










그러다 2009년에 마틴 스콜세지가 설립한 필름 파운데이션(Film Foundation)의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World Cinema Project)와 크라이테리온 콜렉션(Criterion Collection)의 공동 작업으로 수년간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의 4K 디지털 리마스터링한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극중 '샤오쓰' 역은 <해피투게더>, <와호장룡>, <적벽대전>, <일대종사> 등 출연한 배우 장첸인데요.  이 영화는 장첸의 데뷔작이자 어린 시절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봤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다시 꺼내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불가 항적인 생각. 그냥 주어진 상황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말이에요.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밍'이 선택한 삶의 배경은 어머니의 병과 가난이 있었고, 평범하고 모범생이었던 '샤오쓰'는 60년대 대만의 암울하고 불안한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사건은 운명과도 같이 회색 사진첩처럼 차곡히 쌓인 결과물이었던 것이지요. 지금의 내 모습도 운명적으로 결정지어진 과거의 산물처럼 느껴졌습니다. 61년 종전 후 대만의 불안한 삶과 2019년 대한민국의 불안정한 삶과 무엇이 틀릴까요? 12월입니다. 12월은 한 해를 돌아보고 또 새해를 맞이하는 회환과 설렘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달인데요. 올해 잘 마무리하시고요. 에디터 SU는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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