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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Dec 24. 2019

<티모시 샬라메>에게 보내는 글

에디터 SU의 쉐어컬쳐


안녕하세요. 에디터 SU라고 합니다.

저는 스타트업 회사에 몸담고 있습니다. '에디터'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여러 다른 업무를 하고 있죠. 보통 영화 리뷰를 쓴다거나 회사 프로그램 소개 글 등을 적기도 합니다. '에디터'라는 일의 무게가 저를 짓누를 때가 많아요. 하지만 당신을 이전부터 지금까지. 정확히 말하면 <더킹 : 헨리 5세>를 보면서 묘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할까요. 당신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평범한 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저도 사실 연기를 꿈꿨던 연기 지망생이었고, 관련 학과를 다녔습니다. 분명 어느 시기, 그러니까 20대 초중반까지는 그럭저럭 단편 영화 등에서 연기도 하고, 지망생들끼리 모여 연출도 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저는 연기가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일하고 있는데요. 그때 알았던, 그러니까 연기자의 꿈을 같이 꾸었던 친구를 10여 년 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연기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놀라운 건 그 친구는 연기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음에도 연기의 꿈을 지금까지 꾸고 있다는 것이에요. 나를 쳐다보며 "한 번쯤 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는 그 다부진 입술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과 부러움이 섞인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집요함에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티모시, 당신에게는 그런 집요함이 보입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당신의 연기는 물론 좋았지만 신선했다고 해야 할까요? 연기는 본인이 살아가는 신념, 삶과 동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제의 내 모습과 오늘의 연기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정형화된 어떤 모습이 좋은 배역을 맡았다고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의 당신의 모습은 인위적인 성숙함이나 연기를 위한 포장 같은 건 보이지 않았어요. 영화 속에서조차 성장통을 겪는 게 느껴졌고, 그건 현실과 영화 속 배역과의 묘하지만 매력적인 수준의 갭이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갭을 사랑합니다. 완전히 똑같을 순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갭은 연기자로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기분 좋은 갭입니다. 티모시, 당신의 매력은 외모보다는 그런 신중함이나 집요함, 마치 아이돌의 가벼운 팬덤과는 달라서 좋았습니다.

<길버트 그레이브>나 <베스킷 볼 다이어리>에서 봤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생각이 났어요. 미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갈등은 어쩌면 진부할 수 있지만, 동기화가 필요합니다. 그렇죠. 연기는 동기화가 중요합니다. 캐릭터와 현실의 '나' 사이의 동기화는 생각의 흐름을 어느 선상으로 일치시키는 걸 의미하는데요. 그게 아주 기가 막히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 같아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의 당신의 연기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시나리오의 텍스트와 감독의 연출 방향과 가이드, 그리고 주변 연기자들과의 호흡을 맞추는 것등은 모두 추상적이고 애매합니다. 오롯이 표현하는 몫은 배우의 역량에서 비롯될 텐데, 왠지 저는 베테랑 연기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함에 매력을 못 느끼는 편이에요. 바로 성장통을 겪고 있는 미소년 배우에서 대배우로 성장해가는 과정 자체는 섹시함 그 자체로 느껴집니다.

<더킹 : 헨리 5세>를 보면서 이 글을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한국은 생각보다 춥지 않은 2019년 마지막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항상 그렇듯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감정은 약간 혼란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가끔 불필요한 생각이나 선택을 하게 마련입니다. <더킹 : 헨리 5세>를 보면서 뜬금없는 희망이 생겼어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내가 봤던 '티모시'가 <더킹 : 헨리 5세>에서 보이는 성장이란 솔직히 질투가 날 정도로 발전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에 대한 태도가 한 영화를 보며 발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놀랍지만, 그건 '티모시' 당신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멀리서 당신의 신작 영화들을 놓치지 않고 볼 예정입니다. 미소년의 성장통을 연기했던 배우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배우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면, 언제나 관찰자 시점으로 집중하며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시겠지만) 기억했으면 합니다. Timothee, I'll always miss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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