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판타지의 가장 큰 장점은 우리 내면의 상상을 시각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데 있습니다. 판타지로서 가장 많이 채용하는 주제라면 히어로적인 상상이 아닐까 하는데요. 나니아 연대기에서 그랬고 해리 포터가 그렇게 했으며, 캐리비언 해적과 반지의 제왕에서도 전무후무한 영웅의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영웅적 심리는 관객으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극대화하는데요. 해리 포터는 페투니아 이모네 집에서 약 10년 동안 불행한 유년 시설을 보냅니다.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사촌에게까지 괴롭힘을 당할 때 "익스펙토 페트로눔"을 외치며 마법의 방망이로 얄미운 그들에게 마법을 시전 하면 우리는 흥분하기에 충분했죠. 누구나 가까운 친척이나 지인으로부터 무시당하거나 차별, 모욕 등을 경험한 적이 있기 마련인데요. 우리는 그때의 기억을 해리 포터의 마법의 지팡이로부터 배설했던 것입니다. 판타지 장르는 누구나 한 번쯤 가졌을 법한 영웅적 심리를 다양한 인물을 통해 투영해 주고 대리 만족을 제공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교사입니다. 안은영은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심상치 않은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명랑 판타지 시리즈인데요. 판타지이긴 하지만 '명랑'이라는 수식어가 이 작품의 호불호를 조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안은영이라는 여성 퇴마사 캐릭터는 판타지 덕후들이 봤을 때 이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히어로 일 텐데요. 명랑과 판타지, 그리고 장난감을 들고 '젤리'를 처치하는 여성 퇴마사의 모습은 자칫 '저게 뭐지?' 싶게 만드는 당혹스러움을 안겨줍니다. 히어로 판타지 물은 웅장함과 거대한 악의 세력과 싸우는 정의로는 캐릭터가 주를 이루게 마련인데, 장난감을 들고 젤리를 무찌르는 여성의 모습은 흡사 장난과 같이 비칠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능력치는 탱커보다는 법사에 가깝고, 홍인표는 힐러에 가까운데요. 특히 홍인표라는 인물은 안은영의 포션이자 필살기 지원자이기도 합니다. 안은영과 홍인표는 앞으로 물리쳐야 되는 수많은 젤리들을 파티 플레이를 통해 해결할 것인데요. 그중 몇몇 주변 인물들은 딜러로서 안은영을 도와주는 인물일 것입니다. 이 캐릭터 간 구성 요소는 영웅적 판타지의 기본 요소이고, 이런 인물들 설정은 판타지 장르에 촉매제와 같습니다. 예를 들어 탱커 캐릭터는 파워는 높지만 스피드와 마법 수치는 적은 특성을 보조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한데요. 그것을 상생 구도라고 합니다. 각각의 인물 캐릭터의 상생 구도를 보는 것만으로 극적 몰입은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안은영이라는 주인공 중심으로 다양한 상생 구도를 만드는 캐릭터들을 보는 것만으로 마니아층은 열광할 것입니다. 이렇듯 <보건교사 안은영>역시 히어로 판타지물의 기본 플롯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시각적 새로움 때문에 혼란은 느끼는 관객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전 판타지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스펙터클한 것이 마치 작품성과 함께 완성도를 겸비하고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영웅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의 서사는 익히 봐왔던 일반적인 플롯이 존재하는데요. 기본 플롯은 주인공의 과거와 같이 전체 극적 흐름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지루한 배경 설명입니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은 일반적인 서사를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부분이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자극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안은영의 어린 시절을 통해 안은영이 왜 저런 능력을 갖게 됐는지, 또 젤리의 존재에 대한 히스토리적 설명 등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시작부터 주인공과 젤리와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죠. 학교 여기저기에 젤리가 붙어있고, 은밀한 학교 지하실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젤리는 관객들로 하여금 신선함과 동시에 낯선 당혹감을 동시에 줍니다. 선악이 분명한 판타지 서사에서 젤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도 이전 판타지 장르에서 볼 수 없었던 요소입니다. 일반적인 서사구조를 따르지 않은 이 당돌한 판타지에 사전 지식이 없는 일반 관객은 다소 못마땅한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죠.
<보건교사 안은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바라보는 세상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밤길을 혼자 다닐 때 어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죠. 대낮에 길거리에서조차 수많은 시선 강간을 당하며 여기저기 헌팅이랍시고 무례하게 말을 걸거나 터치를 하는 일도 빈번한데요. 여성으로서 자취를 한다는 것은 새벽에 누군가 현관 번호 키를 마구 누르는 정도의 공포는 한 번씩 거쳐가야 하는 통과의례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수많은 젤리들이 음흉하게 때로는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젤리를 바라보는 여성 시각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들 즉, 범용적으로 접근하는 물리적인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나만의 무기를 소장해야 합니다. 현실에는 무분별한 폭력으로부터 받아치는 말대꾸 정도일지라도 상상은 자신만의 필살기, 비비탄 총을 가져야만 합니다. 폭력으로부터 이겨내기 위한 나만의 방법과 나에게만 보이는 폭력들을 고이 숨겨둔 비비탄 통을 꺼내 조용히 혼내주는 쾌감. 그 혼내주는 판타지스러운 방식이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유머와 함께 주요 서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서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보건교사 안은영>은 연신 "뭐지?"를 되뇌는 몰이해의 경험을 갖게 됩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이런 속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일반 관객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예상컨대 호불호를 떠나 안티까지 생길 수 있는 우려도 생기는데요. 여성작가와 여성 감독이 만나 여성 서사로 구성하는 여성 히어로 판타지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함과 동시에 새로운 장르적 탄생을 예고합니다. 총과 칼, 멋진 마법과 함께 등장한 거대하고 웅장한 판타지만 있던 세상에서 아기자기하고 명랑 발랄 판타지는 매력을 넘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어떤 제도가 정착하기까지는 시일이 소요되는데요. 그것을 우리는 과도기라 부릅니다. 새로운 여성 시각으로 탄생한 명랑 판타지의 과도기적인 성장을 <보건교사 안은영>을 통해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