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SU의 쉐어컬쳐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로 촉발한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공론화시켰습니다. 서 검사의 폭로 이후 성범죄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이 본격화됐었는데요. 문화 예술계에서 폭로가 시작되면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고은 시인, 연극계의 대부 이윤택 감독 등 문화계 인사들이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정치계로도 미투 운동이 번지면서, 그 당시 대권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역시 비서로부터 성폭행으로 고발당하면서 그의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요.
'미투 운동'은 페미니즘을 한국 사회 담론으로 확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중요성은 제 주위의 평범한 직장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회식자리에서의 신체적 접촉 물론이고 부적절한 언행이 줄었으며, 공적인 회의에서도 상사들의 불필요한 언행이 의식적으로 줄어드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의 페미니즘을 한 단계 성장시키는 계기를 만들지 주목되는데요. 아직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온적인 한국 사회에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법적 제도 개선과 함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 사례가 나오길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장왕 하게 페미니즘을 언급한 이유는 바로 이 영화 때문인데요. 영화 <휘파람의 노래: 시벨>은 남성 중심적인 마을에서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그 폭력을 극복하는 한 여성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휘파람의 노래: 시벨>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인공 '시벨'(담라 쇤메즈 분) 은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터키 흑해 지역 산악지대의 외딴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벨은 어렸을 때 열병을 앓아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지역의 고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휘파람 언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하고 있습니다. 시벨의 언어장애는 임신을 한 여성이나 결혼을 앞둔 여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미신 때문에 마을의 여성들로부터 배척을 당합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이 이웃 숲에서 살고 있는 늑대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늑대를 잡아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합니다. 매일 총을 메고 산에 오르며 늑대를 잡기 위해 구덩이를 파서 그쪽으로 유인할 먹이를 던져 놓습니다. 시벨은 여느 때와 같이 늑대를 잡기 위해 산에 오르고 탈영병의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상처 입은 탈영병을 치료해 주며 그를 도와주던 시벨에게 처음으로 남성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됩니다. 그 남성과의 조우로 인해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과거 여성에 대한 전통적 억압을 그리는 영화들은 극복의 이중성을 나타냅니다. 대를 잇기 위한 의존적 성 역할과 노동으로서의 불평등한 남녀 역할,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모두 폭력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폭력을 극복할 수밖에 없는 주변 환경과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여성은 수동적 의지로 감내하게 됩니다.
자식이 장성하면 여성이 또 다른 여성에게 억압자로 대물림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가부장제는 남아선호사상과 동일시되면서 내 아들이 또 다른 며느리를 맞이할 때 며느리를 억압하는 시어머니의 폭력이 그러한데요. 이런 현상은 지금도 행해지고 있고 과거에는 당연한 수순처럼 내 할머니를 거쳐 어머니까지 전해지는 레거시 문화입니다. 영화 <휘파람의 노래: 시벨>은 과거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공동체에서의 전통적 성별 불평등이 거의 동일하게 자행되고 있는 모습을 주인공 시벨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벨의 언어이자 의사소통의 도구인 휘파람은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해 힘껏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한계를 가졌지만, 반면에 산속에서의 울리는 청아한 목소리로 가장 자연과 어울리는 목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이겨내기 위했던 사회적 규범과 제약, 전통,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노동의 책무 등이 이 영화를 보며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오히려 여성이 또 다른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약자라는 태생적 불리함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으로 보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관조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인생은 단편적이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복잡한 과정과 히스토리, 심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게 마련이죠. 영화에서 나오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왜 등장인물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가라고 얘기했을 때 상황과 과정, 그리고 기질이나 성격 등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운 얘기죠. 시벨이라는 극 중 인물에게 부여되는 여러 상징적인 모습들이 바로 입체적인 한 여성상을 잘 표현한 사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 시대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성에게 선택받아야 하고 선택받기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없어야 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시벨은 약자이지만 오히려 당당히 현실에 맞서는 시벨의 모습을 보면서 페미니즘의 시작은 저렇게 발전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자행됐던 그리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성별 불평등은 어떤 사건에 대항했고 맞섰던 과거의 수많은 여성들로부터 진일보했다면.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역시 한국의 페미니즘을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이자 결과로써의 성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에디터 SU는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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