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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Sep 30. 2020

장률 감독의 영화 <후쿠오카>

신비로운 여행을 함께 떠나지 않으실래요?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였습니다. 창문을 열어두면 초가을의 산뜻한 바람이 집을 스쳐 지나가곤 합니다. 그럴 때면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다시금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밖으로 떠나기가 여간 쉽지 않은데요. 이러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줄 영화를 하나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장률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 <후쿠오카>입니다.  

<후쿠오카>는 책방의 손님인 소담(박소담)이 헌책방의 주인 제문(윤제문)에게 함께 후쿠오카 여행을 가자는, 느닷없는 제안으로 시작합니다. 제문은 다만 손님에 불과할 뿐 아니라 자신보다 서른 살 정도 어린 소담의 제안을 거절하지만, 결국 후쿠오카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 28년 전, 순이라는 한 여인을 두고 다퉜던 동아리 선배 해효(권해효)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문은 소담과 함께 해효가 운영하는 술집을 찾아가고, 제문과 해효는 함께 술을 기울이며 오래 묵은 감정들을 풀게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않을 듯 어울리는 세 사람은 함께 후쿠오카의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고 그 여행 속에서 기묘한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시네아스트로서 장률은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를 찍기로 잘 알려진 감독입니다. <후쿠오카>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무언가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때때로 이야기의 개연성이 어긋나고 영화 내적 세계의 정합성에 균열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묘함의 중심에는 소담이 있습니다. 소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소녀입니다. 소담은 교복을 입고 다니곤 하지만 학생은 아닙니다. 일본어나 중국어를 할 수 없지만 일본인과 중국인의 말을 알아들으며 그들과 대화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화면 속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한 번도 와본 적 없다는 후쿠오카서 그녀를 만나본 적이 있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 속에서 소담은 마치 원래 그러한 것 마냥 의연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행동합니다. 유령에 홀려서 후쿠오카에 왔다는 제문의 말마따나 소담은 마치 유령을 연상케 하는 소녀입니다. 

 또한 소담을 둘러싼 신비로운 일들 외에도 기묘한 분위기를 만드는 여러 일들이 영화 속에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10년간 말을 하지 않았던, 그러므로 농아라 여겨졌던 남자가 갑자기 윤동주 시인의 시 <사랑의 전당>을 읊는다든가, 소담, 재효, 제문 셋이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연극을 한다든가 등의 도무지 무어라 정

의될 수 없는 일들이 영화의 타임라인을 채웁니다.

“걱정 마세요, 다 알아들을 테니깐”


이와 같은 일련의 일들이 영화 속에서 반복되면서 관객인 우리는 이야기를 논리 정연하게 정립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영화는 소담의 입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다 알아들을 테니깐. 긴장하지 않으면 돼요. 즉, 날이 선 논리를 가지고 이 영화에 접근할 것이 아니라 유연한 자세로 영화를 받아들여 달라는 요청입니다. 만약 이와 같은 요청에 따라 영화를 보다 너그럽게 수용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과 함께 후쿠오카의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혹시 <후쿠오카>에서 묻어나는 신비로움을 보다 더 깊게 바라보고 싶다면 장률 감독의 <군산>을 먼저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해드립니다. <군산>은 이 영화의 바로 이전 작으로, <후쿠오카>와의 내적 연관성이 깊기 때문입니다. <군산>에서 배우 박소담은 어머니를 잃고 자폐를 겪는 재일교포로 등장하고 윤제문은 학교 후배 윤영(박해일)과 함께 군산으로 여행을 가는 송현(문소리)의 전남편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군산>에서 소담의 고향은 후쿠오카이기도 하고 소담이 가지고 다니는 빨간 인형과 그녀가 부르는 노래가 <후쿠오카>에서 반복되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상이한 영화의 각기 다른 인물들이 어딘가 묘하게 겹치고 서로 다른 국가의 공간들이 이물감 없이 섞이면서 보다 더 확장된 영화적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가끔 삶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곤 합니다. 꿈속에서 본 일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하고 실제로 겪었다고 믿었던 과거들이 거짓으로 판명이 나곤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을 용서하기도 하고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던 사람들과 친한 친구가 되기도 하는 그런 일들도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나도 세상도 참 이상하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방식은 아닐까요? 느닷없고 우연하게 생기는 일들이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면서 또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입니다. <후쿠오카>는 바로 그러한 삶의 방식으로의 여행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영화 <후쿠오카>와 함께 여행을 떠나다 보면, 그 기묘한 여행으로부터 당신은 어긋남에서 오는 어떤 삶의 신비를 발견하고 장난스러운 삶의 농담으로부터 희한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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