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사랑하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세계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집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계신 가요? 9월 25일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과 함께하는 즐거운 집콕 생활이 기다려지는데요. 공개된 메인 예고편의 소리도 주의 깊게 들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중간중간 ‘보건교사다 잽싸게 도망가자’, ‘나는 안은영’, ‘젤리젤리’ 같은 말들이 귀에 꽂힐 때마다 묘한 웃음이 피어오릅니다. 방영 전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원작과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명 원작 소설을 쓴 정세랑 작가는 다작을 해오면서도 모든 작품이 큰 사랑을 받은, 만인이 믿고 읽는 작가로, 대표작으로는 <시선으로부터,>, <피프티 피플>, <목소리를 드릴게요> 등이 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9월 16일, 민음사에서 출간 5주년과 작품 영상화를 기념하는 리커버 특별판이 나왔습니다. 마침 또 책 읽기 좋은 가을이고 하니, <보건교사 안은영>의 첫 방송을 기다리면서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1.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정세랑 작가는 ‘안은영이 치맛자락 펄럭이며 싸우는 섹시 여전사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싶었다’며 드라마 각본에 직접 참여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덕분에 안은영은 흰 가운 휘날리며 전투하는 멋있는 전사가 되었습니다. 예고편을 보면 알 수 있듯이요. 소설에서 그려지는 안은영이란 캐릭터는 세상을 지키는 운명을 타고난 이 답게 (본인은 처음에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명감을 띠는, 선한 것을 믿는, 소탈한 성격의, 때로는 필요에 의한 사기를 치기도 하는, 욕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어쩐지 좀 귀엽고 왜인지 되게 멋있는. 소설을 읽어갈수록 1가정-1안은영 보급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더군요. 안은영이 책을 읽는 분들의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정세랑 작가의 바람이 이루어진 걸까요? 가벼운 것을 좋아한다는 정세랑 작가답게, <보건교사 안은영> 역시 명랑한 분위기의 몰입해서 술술 읽기 좋은 SF 액션 어드벤처입니다.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비현실적인 일들이 현란하게 펼쳐집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두 주인공이 있는데요, 보건교사 안은영(왼쪽)과 한문교사 홍인표(오른쪽)입니다. 두 주인공에는 각각 정유미, 남주혁 배우가 캐스팅되었습니다. 저는 캐스팅 소식을 듣고 나서 책을 읽었는데요, 읽으면서 글에 드러난 이미지와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출간 이후 많은 분들이 안은영 역으로 정유미 배우의 캐스팅을 희망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넷플릭스가 공개한 메이킹 영상에서 안은영으로 살아가는 게 정말 즐거워 보이는 정유미 배우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남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일종의 액토플라즘, 죽고 산 것들이 뿜어내는 미세하고 아직 입증되지 않은 입자들의 응집체, 일명 ‘젤리’를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을 처리할 수 있는 퇴마사이자 심령술사입니다. 몇 년 전까지는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했는데, 새벽의 병원 복도에서 호러틱한 젤리들을 만나는 일에 지쳐서 고등학교 보건 교사로 노선을 틉니다. 학교에는 혈기왕성한 아이들의 에로에로 젤리가 가득하지만, 그 편이 차라리 나은 것 같다고 여기면서요.
한문교사 홍인표는 M고 설립자의 손자이자 학교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인물로, 어릴 때 오토바이 사고로 다친 한쪽 다리를 절며, 한문교사답게 전통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거대한 에너지 장막의 보호를 받고 있어 걸어 다니는 행운의 부적으로 묘사됩니다. 개인적으로 장애인 주인공이 한국 드라마에 많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장애인이 직장과 사회에 평범한 구성원으로 녹아들어가 있는 한국 드라마가 흔치 않아서 <보건교사 안은영>의 이런 설정이 고맙게 느껴집니다.
2. 하여튼 퇴마사를 부르기 전에 병원이 먼저라고
안은영과 홍인표가 손을 잡으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안은영은 장난감 칼과 총에 본인의 기운을 입혀 젤리 덩어리를 물리칠 수 있는데, 비비탄 총은 하루에 스물두 발, 플라스틱 칼은 15분 정도 사용 가능합니다. 이집트산 앙크 십자가, 터키의 이블 아이, 바티칸의 묵주와 부석사의 염주, 교토 신사의 건강 부적 등 각종 토템을 더하면 총알을 스물여덟 발, 검 사용 시간을 19분까지 늘릴 수 있는데요. 인표의 손을 잡으면 은영에게로 강력한 기운이 스며들면서 위력이 강해집니다. 체감 50발의 총알을 더 쏠 수 있을 정도로요. 학교 운동장에 나타난 몬스터, 일명 ‘머리’와 싸울 때, 은영이 인표의 손을 잡자 은영의 무기에 빛이 일렁이는 장면이 예고 영상에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쉬는 날에 같이 명승지를 돌아다니며 보양식을 먹곤 합니다. 은영이 인표가 사랑하는 학교를 잘 지켜낼 수 있도록.
아마도 인표의 할아버지로부터 기인했을 강력한 사랑과 보호의 기운은 독특하고 귀한 것이었다. 그것은 은영이 빌려 쓰는 것이었고 사실은 인표도 빌려 쓰는 것이었고 근본적으로는 이 학교의 것이었다. -p.122
3. 왜 역사는 역류 없이 흐르지 못하나요?
공식 티저 예고편은 사립 M고(체육관 이름이 목련 체육관인 걸 보아 목련 고등학교로 예상됩니다)의 풍경과, 그 앞을 걸어가는 오리들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이 오리들은 소설의 중반부의 ‘오리 선생 한아름’이라는 챕터에 등장합니다. 난데없이 학교 연못에 나타난 오리는 부임 2년 차 생물 교사 한아름이 관리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한아름 역에는 이주영 배우가 캐스팅되었는데요, 한아름은 부임 첫해에 의욕이 넘쳐 해부 수업에 쓸 붕어를 몇 탱크나 샀다가 붕어가 집단 폐사하여 학교 전체를 무시무시한 악취에 물들인 적이 있는 캐릭터입니다. 이후 악취 혹은 살아 있는 생물이 관련된 사건만 터지면 한아름 선생에게 맨 먼저 연락이 갔다고 합니다. 갑자기 등장한 오리의 경우도 그렇고요. 오리 선생 한아름과 오리들의 케미가 드라마의 소소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원어민 교사 메켄지 역은 유태오 배우가 맡았는데요, 1학년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좋은 교포 출신 미남이라는 설정입니다. 예고편에서는 영어를 쓰는데 한국어도 유창하고 군 복무도 했습니다. 또한, 쉽게 다른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 은영이 거의 유일하게 탐탁지 않아하는 인물입니다. 에로에로 에너지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자세히 얘기하진 못하겠지만, 소설 속 문장으로 메켄지라는 인물의 미스터리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스님도 목사님도 비뇨기과 수술 환자도 90대 노인도 두 살 아기도 모두 에로에로 젤리를 피워 내느라 바쁜데, 심지어 그 성격 나쁜 인표 선생도 멍 때리는 순간에 보면 뭉게뭉게한데, 메켄지 같은 20대 청년에게 없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거다.”-p.96
4. 살아간다는 거 마음이 조급해지는 거구나. 욕심이 나는 거구나.
고등학교 배경의 밝고 명랑한 이야기임과 동시에, <보건교사 안은영>은 여느 퇴마사의 이야기답게 죽음을 다루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은영은 귀신과 소통하기도 하고, 죽은 자의 망령이 머문다는 집에 가서 퇴마 의뢰를 받기도 합니다. 수명이 스무 살 정도 되는 ‘옴잡이’도 등장하는데, 살 날이 2년 반 밖에 안 남은 옴잡이가 생의 욕구를 간절히 드러내는 것이, 지금은 살아있고 언젠가 죽을 것이 분명한 저에게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삶과 죽음이란 주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우울하지는 않았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우울할 틈 없이 재미와 쾌감을 향해 달려가는 소설이니까요.
폭력적인 죽음의 흔적들은 너무나 오래 남았다.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p.185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정세랑 작가의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지구에서 한아뿐>은 사랑과 환경을 동시에 주제로 하는 소설이고, <시선으로부터>의 종이책은 재생지로 출간되었습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도 일명 ‘환경 세랑’의 섬세한 면모가 보이는데요, 잔인한 공정의 가죽 제품과 기름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차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습니다.
이 외에 정세랑 작가가 역사교육을 전공했다는 흔적도 종종 보입니다. 주로 한문교사 홍인표의 캐릭터를 통해서 나타나는데요. 인표가 ‘최치원이 무덤가에서 두 처녀 귀신을 만나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당시 모음집을 뒤적거리다가 ‘진자앙의 시 「등유주대가」’를 찾는 것이 그렇습니다. 원작을 읽어 보신 분들은 어딘지 눈치채셨나요?
캐스트를 봤을 때, 원작 소설에서 만나지 못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와 에피소드가 기대가 되는데요.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를 연출한 이경미 감독과 정세랑 작가가 만나 텍스트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했을까요? 원작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요? 더 깊이 있는 인물로 변한 안은영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감동시킬까요? 다가오는 9월 25일 오후 4시, 넷플릭스에서 함께 확인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