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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17. 2020

드라마 속 그 책, 두 번째 이야기  

<이번 생은 처음이라>와 <19호실로 가다>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달력을 넘기다 날짜를 보니 어느새 10월의 절반이 지나갔네요.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이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죠. 제가 연말 무렵 가장 많이 떠올리는 건 스무 살의 겨울이에요.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즐거운 만큼 슬픈 일도 많았거든요. 그런 제게 위로가 되어줬던 건 <이번 생은 처음이라>라는 드라마였답니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등장인물들이 관계를 통해 미숙함을 극복해나가는 장면들은 모든 게 어려웠던 당시의 저에게 제법 큰 위안이 되어주었어요.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청년 세대의 아픔과 관계의 어려움을 잘 나타내는 대사들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중요한 순간의 대사마다 이영산의 <지상의 마지막 오랑캐>,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정현종의 <섬> 등 다양한 책들이 등장한답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와 함께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 <19호실로 가다>

<19호실로 가다>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집을 엮어놓은 것으로, 1960년대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규범과 질서가 무너진 상황 속, 성의 자유를 누리고 싶어 하지만 도리어 그 때문에 불안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들입니다. <19호실로 가다>는 단편 중 하나의 제목으로, 완벽한 부부였던 수잔과 매슈의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 과정을 담아냈는데요. 결혼 후 일을 그만둔 뒤 가정을 돌보는 일에만 매진하던 수잔에게 매슈가 자신의 바람을 고백한 뒤 수잔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자유 시간을 가지게 되지만, 이름만 자유일 뿐 언제나 가족의 일에 얽매여 있던 수잔은 초조감과 공허함을 느끼고,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해요. 남편이 2층에 ‘어머니의 방’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 방에도 아이들이 출입하기 시작한 뒤로 수잔은 혼자 있을 공간을 찾아 헤매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집에서 떨어진 도시의 호텔을 찾아 19호실에서 혼자인 시간을 누립니다. 집안을 돌보는 어머니의 역할도 잠시 가정부에게 맡겨둔 채로요. 하지만 그녀의 외도를 의심한 남편 매슈가 탐정을 고용해 그 방을 찾아낸 뒤로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남편 매슈에게 자신이 혼자 있음을 좋아하고 그 방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대신, 바람 상대가 있다는 거짓말을 하죠. 그녀의 거짓 고백에 자신에게도 바람 상대가 있음을 고백한 매슈는 도리어 더블데이트를 제안하기도 합니다. 이후 수잔은 자신의 삶을 살아갈 기운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19호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19호실로 가다>를 읽던 순간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인 지호와 세희는 함께 살기 위해 계약 결혼을 결정합니다. 보조 작가로 일하다 그만둔 지호는 보증금이 없는 방이 필요했고, 집이 있지만, 대출이 많이 남아있던 세희에게는 세입자가 필요했거든요. 애정이 아닌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결혼을 시작했지만, 함께 살며 둘은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각자의 방에서 생활하던 둘이 처음으로 지호의 방에서 함께 자게 된 날, 세희는 지호의 방에 놓인 <19호실로 가다>의 내용을 묻습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EP 13, <19호실로 가다>에 대한 세희와 지호의 대화


“한 부부가 있는데요. 완벽한 부부예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 근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 해요. 그래서 남편이 아내에게 2층에 방을 하나 만들어줘요. 그런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은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아내는 가족들 몰래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 호텔에 방을 하나 구해요. 그리고 가끔씩 그 방에 혼자 머물러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방에 혼자 머물면서.” 
“그 방은 완벽하게 혼자인 자신만의 공간이니까요. 결혼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기도 한다는 거니까,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죠. 충분히. 좋은 얘기네요.”
▲ <19호실로 가다>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지호와 세희
“슬픈 이야기기도 하죠. 사실 그 책 읽으면서 세희 씨 생각을 했어요. 그러셨잖아요. 인생에서 책임질 수 있는 건 이 집과 고양이 그리고 자신 뿐이라고. 그래서 결혼하지 않는 거라고. 그때는 그 말이 되게 와 닿았거든요. 저 역시 이 방 하나를 겨우 책임질 수 있는 상태니까. 근데요. 그렇게 살면, 외롭지 않을까요? 외롭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
“글쎄요. 외롭다는 생각조차 안 하고 살았던 것 같네요. 타인을 견디고 부딪치는 것보다는 혼자인 게 낫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으니까.”
19호실의 문을 여는 방법, 이해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주인공 지호는 스무 살 때 19호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외도라는 거짓말을 선택하는 아내가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지호의 친구 수지는 “이해받지 못하는 걸 설명하기보다 미친년이 되는 게 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죠. 세상은 구차한 것보단 미친년으로 사는 게 쉽기 때문이라면서요.     


우리 안의 19호실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기에 아무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만의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은 19호실이 누구에게나 있을 테니까요. 지난 사랑의 상처를 타인과 부딪치며 극복하는 것보다 혼자 버티는 게 낫다고 생각했던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세희가 결국 지호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 이유는, 지호가 세희에게 보여줬던 따뜻함 때문이었어요. 내 안의 19호실도 누군가의 19호실도, 억지로 파고들기보다 그 문이 열릴 때까지 따뜻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19호실이 닫혀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오늘은 여러분 마음 안의 19호실을 살펴보는 하루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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