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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16. 2020

현대 사회에서 전기가 사라진다면, <서바이벌 패밀리>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여러분에게 ‘전기’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생소한 질문이라서 ‘무슨 소리야. 전기는 전 기지.’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사실 누군가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다면, 저도 위와 같은 답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 않았다면 말이죠. 현대 문명을 통해 여태까지 도달해 본 적 없는 윤택함과 안락함에 눈을 뜬 인류에게, 가장 크나큰 재앙인 ‘정전’이 발생합니다. 그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정전 말이죠. 이런 상황에서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을까 추측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오늘 제가 소개할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サバイバルファミリー)(2017)>입니다.

작품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워터보이즈(2002)><스윙걸즈(2006)>등 일본에서 몇몇 히트작들을 배출한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으로, 2017년도 전주 국제영화제의 폐막작이기도 했습니다.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을 덤덤하게 그려내고, 그 갈등 속 유쾌함이 가미된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 철학답게 극도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데요. 영화는 포스터 속 문구처럼 일본 전역이 정전되었음에도 유쾌하게, 그렇지만 다소 짠하게 일본 전국을 횡단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도쿄에 살고 있는 스즈키 가족은 평범한 서민 가족입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인 아빠 스즈키 요시유키(코히나타 후미요 분), 겁 많은 전업주부인 엄마 스즈키 미츠에(후카츠 에리 분), 늘 헤드셋을 끼고 다니는 장남 스즈키 켄지(이즈미사와 유키 분), 인조 속눈썹과 스마트폰에 목숨을 거는 장녀 스즈키 유이(아오이 와카나). 이 4명으로 이루어진 가정은 평범하지만 조금 건조한 듯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생선을 손질해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거절하고 잠을 자는 아빠. 부모의 말을 무시하고 방에 들어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면 건조함을 넘어 약간 삭막해 보이기까지 하죠. 문명의 이기에 지나치게 익숙해진 현대 가족의 폐해를 보여주듯, 이들의 모습은 ‘가족’보다는 ‘집을 공유하는 홈메이트’에 더 가까워 보일 지경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일상에, 아니 국민 모두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깁니다. 바로 ‘전기’가 사라진 것인데요. 불도 켜지지 않아 양초를 켜고 밥을 먹고, 전철도 다니지 않아 자전거를 장만하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습니다. 마트는 카드 결제가 어려워 현금만 받게 되고, 모든 학교와 회사는 불가피하게 문을 닫게 됩니다. 처음에는 며칠만 지나면 원래로 돌아올 거라고 안심하던 사람들도 점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본질적인 ‘생존’에 대해서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스즈키가(家) 역시 결국 큰 마음을 먹습니다. 집을 비우고, 외딴 시골 가고시마에 홀로 살고 있는 외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내려가자는 것이었죠. 남은 현금을 탈탈 털어 가고시마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생각에 가족들은 신이 나서 자전거를 타고 공항으로 달려가지만, 비행기는 뜨지 않고 가족들을 포함해 분노한 대중들은 상황을 무마하려는 경찰과 대치하게 됩니다. 결국 비행기행은 포기한 가족들은 순전히 자전거로만 최남단 가고시마에 내려가기로 하는데요. 문명 지식은 백점이지만 생존 지식은 빵점인 스즈키네 가족들. 네 명은 과연 이 극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문명의 이기는 인류에게 믿기지 않는 속도로 발전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시간 속에서 인간 간의 연결은 점점 분리되고, 개개인 독립체로도 충분히 생활 가능한 사회가 되었는데요. 이런 최첨단 사회에서 그 모든 것을 지탱하는 ‘전기’가 완전히 소멸되었을 때의 변화에 대해서 영화는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편해진 사회 속에서 되려 인간 간의 신뢰감이 생기고, 가족 간의 유대감이 생겨나는 아이러니함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역대급 규모의 아비규환 속에서 유토피아적인 이야기만 논한다는 비판점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그럼에도 현재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소중함을 원시 사회로의 회귀라는 장치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판타지적 요소라고만 생각했던 영화 속 설정은, 2019년 태풍으로 인해 도쿄 인근 치바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48만 가구가 정전되었음에도 복구에 시간이 걸려 치바 주민들은 약 2주간 정전 상태로 지내야만 했는데요. 비록 옆 나라인 일본의 경우였지만,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무엇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례인 셈입니다. 문명이 우리에게 주는 편리함에 감사하되, 때로는 그 문명이 결핍되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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