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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16. 2020

로맨스 클리셰의 시작, 「오만과 편견」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남자와 여자, 둘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가까워졌다가도 오해로 다시 멀어지고, 그러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자각하고 고백합니다. 결혼식을 올린 둘은 한 쌍의 잉꼬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 같지 않으세요? 사실 대부분의 로맨스나 멜로 장르가 이런 공식을 따릅니다. 늘 뻔한 클리셰라고 말하지만 원래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죠. 이 흔한 로맨스 클리셰의 역사는 놀랍게도 고전으로 익히 알려진, 바로 「오만과 편견」입니다. 고전이니 무거운 주제와 내용만 있을 것 같나요? 지금부터 줄거리를 들어보시면 그런 생각은 사라질 겁니다.

영국의 시골마을 롱본에 잘생긴 젊은이 둘이 찾아옵니다. 롱본에 네더필드 파크라는 대저택이 사기 위해서였는데요, 연간 4~5000파운드(당시 1000파운드가 지금의 5000만 원에서 1억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요.)의 수입이 있는 빙리, 그리고 연간 10,000파운드의 수입과 동시에 뼈대 있는 귀족 지위를 가진 다아시가 롱본에 머무르기로 합니다. 이 소식은 시골마을에 퍼지고, 딸만 다섯인 베넷 家에도 전해집니다. 어떻게든 딸들을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려고 혈안인 베넷 부인은 빙리와 다아시를 보며 기대를 품습니다. 무도회가 열리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마주하게 됩니다. 엘리자베스의 눈에는 다아시가 잘생기긴 해도 매우 오만하고 딱딱하게 보입니다. 반면 다아시의 눈에는 엘리자베스가 매력적이지만 베넷 家의 낮은 지위와 창피한 행동들 때문에 일부러 무뚝뚝하게 굽니다. 

둘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위컴이라는 장교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엘리자베스의 신뢰를 얻죠. 엘리자베스의 언니 제인과 빙리는 사랑에 빠집니다. 한편 사촌 콜린스 씨가 롱본에 방문해 엘리자베스에게 적극적으로 구혼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 다짐한 엘리자베스에게 콜린스 씨는 인성, 지성 뭐 하나 나은 것이 없습니다. 엘리자베스가 진땀을 빼고, 은연중 제인과 빙리의 결혼 이야기가 오갈 때쯤 돌연 빙리는 런던으로 떠납니다. 콜린스 씨도 엘리자베스가 아닌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과 결혼합니다. 제인은 상심해 런던에 있는 외삼촌댁으로 떠나고, 엘리자베스는 샬럿의 초대를 받아 콜린스 씨 댁으로 떠납니다. 이렇게 다 끝난 줄 알았지만 로맨스의 묘미는 우연이라던가요, 콜린스 씨 댁 바로 옆에 있는 로징스 파크에서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 재회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하고 있었다면서요. 하지만 위컴이 증언한 다아시의 신사답지 못한 행동들과 함께 제인과 빙리의 사랑을 망쳐버린 것이 다아시라는 것을 안 엘리자베스는 매몰차게 거절하죠. 다아시는 편지로 진상을 밝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생각한 둘은 그렇게 헤어집니다. 제인은 빙리에 대해 단념하고, 엘리자베스도 기분전환을 할 겸 외삼촌 부부와 여행을 갑니다. 그러다 우연히 다아시의 본가인 펨벌리를 방문하게 됩니다. 어색한 침묵 속 서로는 서로를 다시 보게 됩니다. 오만함 속에 숨겨진 배려, 편견 뒤에 숨은 진심을 말이죠. 핑크빛 기류가 흐를 무렵 좋지 못한 소식이 도착합니다. 엘리자베스의 동생 리디아가 위컴과 야반도주를 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충격에 휩싸인 채로 다아시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옵니다. 리디아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제인과 빙리, 그리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오만과 편견을 극복하고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요?

자잘하고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너무 많아 줄거리에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이 한입니다. 사실 오만과 편견은 단순히 귀족과 젠틀리 계급 간의 사랑을 다룬 로맨스 소설이 아닙니다. 18세기 영국의 모습을 아주 자세하게 그려냈습니다. 당시 영국의 상속법에 의하면 여성에는 상속권이 없었고, 베넷씨가 죽으면 유산은 모조리 사촌 콜린스 씨에게 가도록 되어있죠. 사회적 통념과 법 때문에 여성들에게 기회란 오직 결혼밖에 없었습니다. 베넷 부인이 왜 그리 딸들 결혼에 열성인지 이해가 시나요? 이뿐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위선을 풍자적으로 그려냈고 감정선 또한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만하면 훌륭한 고전이죠?

「오만과 편견」은 영화와 드라마로 이미 제작된 바 있으며 작년에는 충무아트센터에서 2인극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영화로는 1940년, 2005년에 제작되었으며 드라마는 1995년에 BBC에서 방영한 <오만과 편견>이 유명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BBC 드라마 버전과 연극을 추천합니다. BBC 드라마는 실제 의상이나 예법 고증에 철저하면서 곁가지로 나오는 에피소드를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살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콜린 퍼스의 리즈시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 <오만과 편견>은 2인극으로 진행되면서 연극의 묘미와 원작의 재미를 두 배로 살렸죠. 연극 <오만과 편견>은 11월 29일까지 예스 24 스테이지 3관에서 진행된다고 하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한 번쯤 관람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 다시 쓰기>,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조선판 오만과 편견> 등 「오만과 편견」은 다양하게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리메이크되고 회자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소설과 이미 대문호들이 써놓은 고전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살아있다면 괜히 살아있는 게 아니죠. 이번 기회에 「오만과 편견」 한번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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