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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SU Oct 02. 2020

이름이 곧 장르, 알프레드 히치콕의 명작 스릴러 5선

레베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이창, 싸이코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황금연휴 동안 영화 많이 보셨나요? 영화사에서 거론되지 않을 수 없는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조셉 히치콕의 재미있는 스릴러 다섯 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히치콕’이라는 이름은 그의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데요. 히치콕은 19세기에 태어나 기사 작위가 있을 정도로 상당히 예전 사람입니다. 히치콕의 영화는 음영을 잘 활용하고 있는데, 빛과 어둠으로 긴장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시한폭탄 이론’으로 관람자의 숨통을 조여 오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이 모든 것이 현실이 아니었음에 안도하게 만듭니다. 앞으로 소개할 히치콕의 대표작이자 명작 다섯 편을 맵기 정도로 따지자면 <레베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현기증>, <이창>, <싸이코>로 갈수록 매운맛입니다. 개봉연도 순서대로 소개하겠습니다.


1. 아무도 그녈 대신 할 수 없어, <레베카>(1940)

동명의 뮤지컬로도 유명한 <레베카>는 히치콕의 할리우드 진출작입니다. 원작 소설이 있고, 이를 각색한 것이 이 영화이며, 뮤지컬은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뮤지컬 넘버가 들어간 영화 레베카를 내심 소망하고 있습니다. 저는 뮤지컬을 먼저 관람하고 영화를 봐서, 노래가 없으면 영화가 허전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영화는 고전 저택 스릴러를 제대로 묘사해냈습니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주인공 ‘나’와 ‘막심 드 윈터’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합니다. 상류층 사람인 막심을 따라 영국 맨덜리의 저택의 안주인이 된 평범한 신분의 ‘나’는, 집안 곳곳 남아있는 막심의 죽은 전처 ‘레베카’의 흔적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레베카와 함께 저택에 들어온 집사 ‘댄버스 부인’은 맨덜리의 안주인은 레베카라 생각하여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보는 내내 ‘나’가 불쌍하더군요.

댄버스 부인의 존재감은 그가 출현하는 모든 장면에서 두드러집니다. 무표정만으로도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며 발소리도 없이 깜짝 등장하는데요, 이는 긴장감을 조성하려는 감독의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입니다. 댄버스 부인이 발코니에서 ‘나’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시퀀스와, 보트 보관소에서 막심이 ‘나’에게 맨덜리 저택에 대한 진실을 알려줄 때의 카메라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레베카가 정말 살아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생생한 연출이었습니다.     


2. 이것은 영화를 엿보는 영화, <이창>(1954)

실제로 31채의 아파트를 만들어 촬영한, 엄청난 세트장을 자랑하는 영화입니다.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 ‘제프리’는 달리 할 일이 없어 쌍안경으로 창밖의 이웃들을 훔쳐봅니다. 서로 만난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나 꾸준히 그들을 지켜본 결과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인데요. 어느 날 그는 맞은편 아파트에서 남편이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살해한 것을 목격하지는 못하고 정황을 잡아내는데요. 직감 또한 그리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창’은 ‘뒷창문’이란 뜻입니다. 제프리는 관찰만으로 프로파일링을 합니다. 그에게 창 너머 풍경들은 영화인 셈입니다. 그는 제한된 창틀 안에서만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그가 하는 엿보기 행위는 엄연히 범죄입니다. <이창>을 두고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관음증을 테마로 하는 영화라고 하는데, 저는 ‘대다수 사람이 그것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관음증은 보편적인 정서나 욕구가 아니니까요.

관객은 제프리의 눈을 통해서 영화를 바라봅니다.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사람과 아파트 두 채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고, 맞은편의 얼굴도 작게 보이기에, 그쪽에선 이쪽을 쳐다보지 않기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간격이 깨지는 순간, 숨통을 조여 오는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히치콕 스릴러의 핵심이 바로 이 ‘시한폭탄 이론’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폭탄이 터지는 것에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테이블 밑에 시한폭탄이 설치돼 있다고 관객에게 알려주고, 주인공이 그 테이블 가까이 걸어갈 때, 관객은 긴장하게 됩니다.


3.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유성영화, <현기증>(1958)

지붕을 타고 도망가는 용의자를 추격하던 두 형사가 있었습니다. 높은 건물에서 한 사람은 추락해 사망했고, 떨어지는 동료를 지켜본 나머지 한 사람, 주인공 ‘퍼거슨’은 고소공포증이 생겼으며 트라우마로 인해 형사직을 그만둡니다. 다리가 긴 스툴 위에만 올라가도 현기증이 나기 때문인데요. 어지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자동차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이나, 배우의 헤어스타일로 만들어낸 원형의 이미지를 활용했습니다.

퍼거슨은 옛 친구 ‘개빈’으로부터 사적인 의뢰를 받습니다. 이상 증세를 보이는 아내를 미행해달라는 것입니다. 개빈은 아내 ‘매들린’이 유령에 홀린 것 같다고 합니다. 퍼거슨은 자동차를 타고 매들린을 따라다니며 그가 일정한 루틴을 반복하고 있음을 파악합니다. 퍼거슨이 보기에도 매들린은 어딘가 넋이 나간 사람 같습니다. 퍼거슨이 물에 몸을 던진 매들린을 구한 후에 두 사람은 연인이 됩니다. 퍼거슨은 매들린이 정신병을 치유할 수 있게 돕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습니다.

감독은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퍼거슨의 심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일명 ‘현기증 기법’을 창조했습니다.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를 줌인하면 어디론가 빠져드는 것 같이 어지러워 보이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히치콕 감독의 전성기에 탄생한 <현기증>은 전체적으로 묘하고 아름답고, 어쩐지 서글픈 낭만적인 영화입니다. 많은 영화감독의 인생 영화이자 박찬욱 감독이 영화감독의 꿈을 품게 만든 영화이기도 하고요. 이 영화의 백미는 전반부의 서정적이고 쓸쓸한 분위기, 그리고 후반부의 진실이 밝혀지고 나서 장르가 미스터리에서 스릴러로 전환될 때의 온도 차가 아닐까 싶습니다.


4. 보이지 않는 제3의 사람을 찾아서,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

주인공 ‘로저 O. 손힐’은 광고업자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그는 CIA 요원 ‘조지 케플런’이라는 사람으로 오인되어 납치당하고, 이후에 사건들이 얽히고설켜 살인자라는 누명까지 쓰여 도망자 신세까지 됩니다. 손힐은 몰래 탑승한 열차에서 자신을 경계하지 않고, 심지어 살인자일 수도 모르는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 이상하고 신비한 여인, ‘이브 켄들’을 만나는데요. 역시나 사랑에 빠집니다.

소개한 영화 다섯 편 중에서 가장 마음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첩보 액션물이므로 박진감이 있기도 하고요. 또한, 이 영화는 배우의 연기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 ‘북북서’라는 방향이 실제로는 없는 방위인 것과 같이, 손힐의 미들네임인 ‘O’에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공허한 그의 삶을 상징하죠. 그는 조지 케플런이라는 사람을 연기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내면을 채워갑니다. 배우가 필모그래피를 가꾸어가면서 연기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처럼요.

<싸이코>의 샤워씬과 더불어 히치콕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옥수수밭 씬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누군지 모르는 상대와 싸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고요한 옥수수밭에서 무엇인가 나올 것은 분명한데, 아주 오랫동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오히려 그것이 관객의 애를 태웁니다. 손힐이 어디까지 진로를 돌려서 결국엔 어디로 닿게 되는지가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5. 역사상 최고로 무서운 영화, <싸이코>(1960)

히치콕의 명함과도 같은 작품을 소개할 차례네요. 히치콕의 영화는 귀신과 좀비가 나오는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불안한 듯 흔들리는 카메라 무빙, 음악감독 버나드 허먼의 바이올린이 두드러지는 사운드 트랙 등의 장치들이 합쳐져 거대한 시한폭탄 돌리기를 하는 서스펜스입니다. 충격적으로 무서워서 한동안 샤워할 때 많이 힘들게 한 영화 <싸이코>는 예산 문제 때문에 흑백으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신의 한 수였다고 봅니다. 피는 초콜릿 시럽을 썼다고 하네요.

회사원 ‘마리온’은 남자 친구 샘과 결혼하기 위해 회삿돈을 훔쳐 도주합니다. 운전하던 중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근처에 있던 ‘베이츠 모텔’에서 하룻밤 투숙하기로 하는데요. 마리온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모텔 주인 ‘노먼 베이츠’는 모텔 뒤쪽의 단독주택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합니다. 마리온이 실종되고, 다양한 목적으로 마리온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추적 끝에 마리온이 묵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베이츠 모텔을 찾아냅니다.

<싸이코>를 먼저 봤던 저는 <현기증>에 나온 호텔이 노먼 베이츠가 사는 집과 내부구조가 똑같아서 잠시 숨이 막혔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어떻게 여덟 살 때 이 영화를 볼 수 있던 건지 모르겠네요. <싸이코>가 중요한 이유는 일단 그 무서움이 한몫을 하지만, ‘스포일러를 하면 안 된다’라는 극장 문화의 시초이면서, 히치콕이 고안한 맥거핀을 사용한 작품 이어서이기도 합니다. <싸이코>에서의 맥거핀은 마리온이 들고 도망간 ‘4만 달러’가 해당합니다.     

작품이 장르를 대표하는 경우는 몰라도, 감독이 장르의 상징이 된 적은 히치콕이 거의 유일합니다. 필모그래피 전반을 스릴러로 채운 이 유쾌하고 집요한 감독은 말년까지도 영화 현장에 있었습니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결국 고전으로, 히치콕으로 돌아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오늘 소개한 5편 외에도 명작이 상당하니 재밌게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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