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뜨거운 여름 해가 지고,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참 반갑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오늘은 가을바람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9월 18일 공개된 따끈따끈한 소식인데요, 바로 ‘벌새’의 김보라 감독이 차기작으로 김초엽 작가의 소설 ‘스펙트럼’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입니다. 최근 각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는 여성 크리에이터들의 만남이 어떨지 정말 기대가 됩니다. 영화를 만나보기에 앞서, 에디터 SU가 김보라 감독, 김초엽 작가, 그리고 ‘스펙트럼’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보라 감독, 그리고 ‘벌새’(2019)
‘벌새’라는 영화에 대해 한 번쯤은 들어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죠.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벌새’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무려 59관왕을 달성했으며,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김보라 감독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벌새’에서 최대한 현실에 있는 여성의 얼굴을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가 전시해 놨던 여성의 모습에서 벗어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이끌어 냈으며 신선하게 느낀 것 같다고 말입니다. 김보라 감독의 여성 캐릭터는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틀에 갇히지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차기작인 소설 ‘스펙트럼’ 또한, 여성 생물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여성 화자를 통해 전개되는 만큼, 김보라 감독이 새로이 숨을 불어넣게 될 ‘스펙트럼(가제)’의 캐릭터도 역시 기대가 됩니다.
김초엽 작가, 그리고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김초엽 작가는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7년 ‘관내 분실’이라는 작품이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가작을 수상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두 수상작을 포함한 총 7편의 단편이 수록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크게 주목받았고, 오늘의 작가 상과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며 대표적인 SF 소설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중 김보라 감독의 차기작으로 확정된 ‘스펙트럼’을 자세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소설 ‘스펙트럼’
촉망받는 생물학자 ‘희진’은 우주 탐사에 참여했다가 실종됩니다. 지구에 두고 갔던 어린 딸이 자라 자식을 낳을 만큼의 시간, 40년이 지난 후 기적적으로 구조됩니다. 희진은 실종되었을 때 외계 생명체를 만났으며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말합니다. 희진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그가 누구에게도 행성의 위치를 말해주지 않은 탓에 곧 외면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희진은 손녀인 ‘나’에게만큼은 행성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주곤 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루이’에 대해서요.
희진이 만난 외계 생명체들은 인간보다 큰 키와 회색빛의 피부를 가졌지만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고 이족보행을 했습니다. 인간과는 달랐지만 외계인 치고는 뭔가 진부한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군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는데, 희진은 그를 구해준 ‘루이’와 함께 생활하게 됩니다. 평소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 업인 학자 희진은 그곳에서 무력감을 느낍니다. 인간 외의 다른 외계 지성체를 최초로 조우했으나 그들의 언어를 분석해 줄 프로그램도 무엇도 없습니다. 오직 본인의 신체와 감각만이 존재합니다. 언어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희진과 루이는 점점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서로의 반응을 아주 약간씩 구별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루이가 죽고 맙니다. 알고 보니 무리인들의 수명은 3-5년으로 인간과 비교해 턱없이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아는 죽지 않고 몸을 바꾸어 가며 끊임없이 전달된다고 여깁니다. 희진은 곧 두 번째 ‘루이’를 만나게 됩니다. 두 번째 루이도 첫 번째 루이처럼 그림을 그리고, 희진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몇 번의 루이의 죽음을 겪으며 희진은 루이가 그리던 그림이 무리인들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네 번째 루이도 그림을 다 읽은 후에 여느 루이들과 같은 루이가 되었죠. 그림은 기록이었으며 그들은 색채를 읽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음성 언어는 가청 주파수를 벗어났고, 색채 언어 또한 인간의 가시 범위 밖이었으니 애초에 인간의 감각으로는 분석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희진은 루이가 희진을 기록하고 관찰한 일기, 즉 연구노트를 가지고 탈출했고, 여생 동안 색채 언어 해석에 몰두합니다. ‘나’는 그중 한 문장만은 잊히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쓰여 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스펙트럼’은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채 언어를 쓰는 외계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진 존재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장 내 곁의 반려동물도, 길에서 마주치는 생물들도 우리와 대화할 순 없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과는 말이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언어’라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반려동물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의 행동 패턴을 이해하며 공생하고 있죠.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이 진정한 소통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희진과 루이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관찰하고, 배려하며 감정을 나눴던 것처럼요.
루이와 희진은 서로를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종이지만, 서로의 존재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은 분명합니다. 루이는 잡기만 해도 멍들게 할 정도의 힘 차이를 가졌지만 낯선 생명체인 희진을 보살펴 주기로 결심했고, 희진은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행성과 멀리 떨어진 후에야 구조 요청을 보내고 평생 동안 행성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루이를 보며 우리 주변의 많은 ‘타자’를 떠올립니다. 말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평생이 지나도 서로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을 수많은 타자들을 말입니다. 희진과 루이의 우정을 통해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겐 희진이자 루이이기를, 혹은 서로의 벽을 점점 더 높여가는 이 세상에서 모두가 자신만의 루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지금까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이자, 김보라 감독의 차기작이 될 ‘스펙트럼’에 대한 리뷰였습니다. 소설 <스펙트럼>을 읽지 않으신 분들에게 꼭 한 번 읽어 보실 것을 추천드리며, 영화가 개봉하면 영화 리뷰로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