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표정이 좋았습니다. 저 표정에는 많은 것들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저 표정은 제 표정과 닮아 있어서 더 애정이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망연자실, 공허, 실망, 허탈로 이어지는 저 표정 속에 일말의 희망은 찾기 어렵지만, 주어진 삶을 살아야만 하는 강제성이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입니다.
제주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 2세 김수는 폭력 전과로 출소한 이후 사회봉사로 해안을 청소합니다. 그가 바라보는 바다에서 서핑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쓰레기통에서 우연히 주운 보드를 가지고 무작정 바다에 뛰어든 수. 수는 서프 숍을 운영하는 똥꼬와 서퍼 해나를 만나면서 서핑을 배우게 됩니다. 수는 서핑을 배우면서 새로운 희망을 가지려고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과 처한 현실이 수를 가로막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깊은 상실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때 상실은 어느새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는데요. 상실감은 어떠한 의지가 없어지는 것과 닮았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한다고 해서 무너져버린 내 주변의 것들이 바로 소생되지 않다는 것을 잘 아니까요. 수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베트남 엄마는 그를 두고 하이난으로 도망친 상황이고, 폭력 사건으로 인해 현재 집행유예 중입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친구 필성과 조선족인 갑보의 인력사무소에서 외국인 불법 취업 브로커 일이 전부입니다.
연신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하는 갑보는 필성에게 고리대금 수준의 이자를 받고 있고, 집행유예 중인 수에게 위험한 일을 맡깁니다. 실제로 수는 누구에게 의지할 만한 상황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자유롭게 서핑하는 서퍼들을 보게 됩니다. 바다에서 파도를 타는 자유로운 영혼들. 수는 어쩌면 그런 자유와 즐거움을 만끽해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수는 본인이 처한 상황을 서핑을 통해 한숨에 다 날려버리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수라는 인물을 통해 어떻게 상실감을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극 중 수라는 인물이 상실감을 이겨냈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그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 주변의 상황이 무너졌다면 그 주변을 새로 재건하려는 노력보다 그곳을 벗어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굴레는 반복적인 상황을 방치하는 데에서 심화되니까요. 수가 택한 방법은 새로운 환경으로의 이전입니다. 그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수는 과감히 새로운 삶을 택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파도를 걷는 소년>은 장편 데뷔작 <내가 사는 세상>(2018)를 통해 노동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영화에 담아 온 최창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입니다. 영화는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살아가는 수를 통해 최근 한국 사회의 가장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이자 앞으로도 지속적인 논의를 필요로 하는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짚어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2세 수가 서핑을 배우며 변화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는데요. 수의 성장을 영화 <파도를 걷는 소년>을 보면서 직접 확인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