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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벌새>, 추천영화

에디어SU의 쉐어컬쳐

by 에디터SU


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생물 역사상 가장 작은 조류는 벌새라고 합니다. 몸길이가 가장 작은 건 6.5 cm라고 하니 정말 작은 새인데요. 이름에 걸맞게 날갯짓을 초당 55회 정도 한다고 합니다. 날갯짓을 많이 해서 에너지 소모량이 다른 새들의 몇 배는 된다고 하는데요. 10분마다 계속해서 꿀이나 곤충 같은 먹이를 먹어야 하고 잠을 잘 때는 거의 가사상태로 잠이 든다고 합니다. 애처롭기도 한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새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조류인 건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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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영화 <벌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는 1994년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요. 1994년은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북한 김일성 주석 사망이 있던 해였습니다. 연이어서 1995년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1997년에 외환위기를 겪게 되는데요. 이런 사건들은 한국이 70~80년을 거치면서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사건이기도 한데요. 영화 <벌새>는 위의 시대적인 환경을 압축해놓은 듯,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사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1994년 시대와 걸맞게 가부장제하에 보통의 한국가정에서 가장의 권력이 어떻게 가족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와 그 상황 속에서 14살 소녀가 가정에서부터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 폭력을 겪는 성장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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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박지우 님)'가 애정을 갈구하고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관계가 단절되거나 붕괴되는 상황은 성장기에 일어날법한 일반적인 상황일 수 있으나 사실은 부모로 받는 사랑이 충분하지 않아서입니다. 사실 이 상황은 부모가 '은희'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맞벌이 부부로서 또는 세습된 가부장제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권위와 소통의 부재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은희'가 불러도 쳐다보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 현관문의 장면들은 '은희'가 갈구하는 애정에 대한 결핍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애정결핍은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되어 원만한 관계 형성에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은희'가 계속해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도 부모로부터 받은 애정이 충분치 않아서 발생하는 악순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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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연결된 남아선호사상 역시 '은희'의 결핍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데요. 가부장제에서 특히 장남은 집안의 대를 잇거나 부모를 모셔야 하는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장남 중심으로 집안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장남 이외의 자녀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차별을 겪게 되는데요. 그 차별은 큰 상처로 남게 되거나 타인을 통해 애정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에서 '은희'와 언니 모두 남자친구가 있다는 점 역시 가족으로부터 받는 애정결핍을 타인을 통해 충족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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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문제는 장남이 집안의 어른 노릇을 하게 되면서 동생들에게 훈계와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에요. 영화에서도 은희는 '은희'를 폭행에 가깝게 때린 오빠를 가족들에게 말하지만 오빠를 혼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은희'의 한자 학원의 '영지' 선생님(김새벽 님)은 '절대 너를 때리게 두지 마. 맞서 싸워야 해'라고 말합니다. 영화에서 '영지'선생님이 죽는 장면이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그 시대에 지식이 많거나 깨어 있는 여성은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어서인데요. 하지만, 맞서 싸운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 페미니즘 역사가 유지되고 현재 미투 운동 등으로 발전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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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감독은 "우리가 지금 겪는 감정과 ‘은희’가 겪는 감정은 사실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외양이 다를 뿐 감정의 근원은 같은 것이다. 어린 시절 겪은 감정이 나이 들었다고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라고 했습니다. 영화<벌새>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살아왔던 또 겪었던 여러 상황들을 적나라하고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나에게 있었던 과거의 어떤 상황을 꺼내게 되는데요. 이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기를 보듯, 내 주변의 일어난 상황을 보듯 격한 공감을 맛보게 됩니다. 영화 <벌새>는 '2019년 가장 찬란한 영화'라는 평과 함께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25관왕을 차지하게 됩니다. 1994년, 알 수 없는 세계를 지나온, 혹은 지금의 알고 싶은 찬란한 세계를 지나는 이 시대 모든 ‘은희’들의 무한 공감을 자아낼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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