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 최근 들어 한국인 가족 단위의 손님이 부쩍 늘었다. 그중에 한 아버지가 아들 셋을 데리고 수업에 오는 집이 있는데 그중 초등학교 1,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내 앞에서 자신의 형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 한국 사람이야? 남자야 여자야?"
그 말을 듣자마자 "저 한국사람이에요"라고 웃으며 답을 해주었고 아이는 당황한 듯 "안녕하세요"라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나는 현재 머리가 숏컷보다는 조금 긴 편이고 (아니, 이렇게 짧을 생각은 없었는데 지난번 치앙마이 미용실에서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완전 숏컷이 되었다가 다시 기르는 중이다) 키는 167cm에 떡대도 있는 편에 무엇보다도 그 친구의 아버지보다 내가 무에타이를 더 잘한다. (!!!!)
굳이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운동하는 것은 아닌데 운동신경이 있는 데다가 10여 년 전부터 조금씩 무에타이를 손에서 놓지는 않고 계속 배우는 중이다 보니 어지간한 남성 초보들 보다는 내가 더 잘한다.
정강이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고 엄지 발가락도 살짝 찢어져서 나름의 부상 투혼을 발휘해 무에타이를 하는 중이다
어디서 언뜻 들은 것 같은데 아이들은 아직 통합적으로 사건이나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사고를 하지 못해서 더 이분법적인 사고를 한단다. 그래서 그 친구의 세상 속에 머리가 짧고 운동을 잘하면 남자여야 하는데 완전히 남자로만 보기에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가 자라나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이분법적인 세상을 넘어서서 무한한 가능성이 넘치는 세상에서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었다.
어렸을 때 어떤 교육을 받는가가 참으로 중요하겠구나, 생각했다. 발달시기의 특성으로 인해 세상을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에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건 나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해준다면 아이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세상의 이분법적인 틀을 뛰어넘음에 있어서도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아빠와 아빠에게 순응하는 엄마. 이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나에게 이분법을 극대화시켜 주입하려 최선을 다했다. '부모님의 뜻 vs 그 이외의 것'이라는 이분법이었다. 나는 여기에 일정 부분은 순응했고 일정 부분은 절대로 순응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공부만 하고 대학교에 들어갔지만 그 이후의 삶까지도 부모님이 가져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나름 극렬히 반대했다. 부모님은 나의 직업(월급을 맡아서 관리해주겠다는 시도도 있었다)/결혼/출산 및 기타 자유의지까지도 자신들에게 주기를 원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부모님에게 어떻게든 나의 삶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인간관계는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했다.
이것은 굉장히 소극적인 반항이었다. 적극적으로 나는 이런 삶을 살겠다, 그것은 당신들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내 뜻을 밝히고 정면대응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님이 두려웠다. 아빠에게는 혼나고 엄마에게는 죄책감을 자극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러한 소극적인 대응을 하면서 나는 우울증, 알콜 의존, 폭식증 같은 일종의 마음의 병을 오래 앓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오래 보내고서야 '이제는 죽을 것 같다'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내 자신만을 돌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 치앙마이에 와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에 필요했던 것은 '그래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다. 그래도 괜찮다, 거절해도 괜찮다. 그래도 너는 내 딸이고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
이 한 마디만 있었어도 나의 세계는 크게 변화했을 것이다.
치앙마이 올드타운 어딘가의 골목, 이런 초록초록함은 천연의 신경안정제 역할을 한다
그 원망감에 20대와 30대 초반을 사로잡혀 있었는데 30대 후반으로 달려가는 지금 느끼는 것은 그 말은 내가 나에게 해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부모님에게 나름의 반항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했다. 다양한 회사에 다니고 20개국에 가까운 나라를 여행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무수히 많은 경험을 쌓았고 부모님의 가르침이 아닌 나 스스로 이분법을 깨고 탈피해야 함을 배웠다.
이 나이에 온 몸에 멍이 들어가며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우고 있는 것만 해도 나는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이분법을 몸소 깨부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 이분법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 거절해도 괜찮다. 그래도 나는 나고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한다.
언제쯤에야 자신감을 완전히 찾을 수 있을지, 자신감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고 있다. 그렇게 최선을 다 하면 언젠가는 부모님에 대한 분노라는 내 일생의 이분법도 넘어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나의 관심이 온전히 나에게 있을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것도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