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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Feb 10. 2024

치앙마이에서 무에타이 경기 관람하기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에서 다니고 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다섯 명이나 시합에 나간다고 하기에 나도 시합을 구경하고 왔다.


선수들의 경험을 위해 거의 2,3주마다 시합이 잡히는 것 같다. 시합 때마다 시합을 보러 갈 것이냐고 묻는 코치들이 짜증 날 때가 있다. 시합 입장료는 원래 600바트인데 자신을 통해 표를 사면 500바트라고 선심을 쓰듯 말하는데 외국인과 태국인의 입장료 자체가 다르다. 아마 태국인은 입장료가 매우 낮거나 무료일 것이다.


외국인에게 500바트를 주고 표를 팔면 코치의 주머니에도 얼마간의 돈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시합 때마다 다소 노골적으로 코치들은 표를 팔려고 하고 지금까지는 그게 눈에 보여서 수차례 거절했다. 이번에 또 끈질기게 시합을 보러 가자고 하기에 고생하는 코치들에게 팁을 준다고 생각하고 표를 구매해서 따라나섰다.


태국인들은 외국인의 돈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결코 쉽게 돈을 벌어서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대다수의 시설에서 태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는 적어도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게 500바트, 2만 원 정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체육관은 치앙마이 시내의 Loi Kroh Boxing Stadium이라는 곳이다. 말이 스태디움이지 한국으로 치면 나이트클럽 같은 곳이다. 나이트클럽에서 손님들의 유흥을 위해 공연을 하듯 이곳에서는 유흥을 위해 무에타이 경기를 보여준다. 치앙마이 시내에 이와 비슷한 경기장은 꽤 여러 곳이 있다.


경기장 입구부터 경기장을 둘러싸고 모두 다 술집이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도 이번에 스무 명 가까운 외국인 학생들이 이 경기를 보러 왔고 다들 술 한잔씩 하며 거나하게 취해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혀가 꼬인 채로 아무 말이나 시전 했는데 특히 내 옆자리의 언니(?)들은 잘생긴 남성 선수들을 보면서 '그의 엉덩이를 보고 싶다'와 같은 말을 하며 낄낄 웃어댔다.


시합은 3분 5라운드씩 총 9경기가 진행되었다. 이 중 정말 볼만한 경기는 두 경기 정도. 나머지는 술 취한 관중들에게 어울릴만한 이벤트성 매치로 경기가 꾸려진다. 이 날은 특히 그 이벤트성 경기가 심했는데 남자 선수가 레이디 보이(트랜스젠더) 선수와 경기하거나 정말 실력이 바닥인 여성 선수들이 맞붙기도 했다.


이벤트성 경기의 절정은 외국인과 태국인이 붙는 경기다. 경기장은 돈 많은 외국인들의 표로 운영이 되는데 외국인 대부분이 백인이다. 백인 선수가 이기는 그림이 나와줘야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확연히 체급이 차이나는 백인 외국인과 태국인 선수(아마도 전업은 아니고 체육관 코치일 것이다)를 붙인다. 태국인 선수가 아무리 노력해도 어리고 덩치 좋은 외국인을 상대로 이기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는 이변이라는 것이 발생했다. 원래 외국인 두 명이 붙는 경기가 있었는데 그중 내가 다니는 체육관 소속의 외국인이 다리를 다쳐서 경기를 못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 우리 체육관 코치가 그 어떤 시합 준비도 하지 않고 대체 선수로 경기에 나섰다. 상대 선수가 우리 코치보다 적어도 10kg은 차이가 나 보였다.

우리 코치가 시합준비도 없이 링에 올라섰다


그렇게 시작한 시합에서 코치는 3라운드 정도까지는 끌려갔다. 의외로 상대 외국인은 무에타이 경험이 꽤 있어 보였고 체급을 앞세워 우리 코치를 몰아세웠다. 하지만 우리 코치는 아직 25세로 현역으로 뛸만한 나이이며 실력도 꽤 출중한 편이란 말이지. 몰리는 가운데서도 계속 상대 왼쪽 종아리에 로우킥을 차셔 데이미를 입혔는데 그것이 쌓이니 마지막 5라운드에서는 상대방이 확연히 느려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상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마지막 라운드에 난타전을 벌였는데 노련한 우리 코치는 그 틈을 타서 상대방 턱에 하이킥을 작렬시켰고 상대가 기절하면서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술집에서 보기에는 수준 높은 KO에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고 코치가 질까 봐 걱정한 우리 체육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잠시간 그는 이 공간의 슈퍼 스타였고 경기를 관람하던 외국인 여성들이 그에게 꽃을 전달하거나 사진을 찍자고 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이런 맛에 그도 경기를 계속하는 거겠지.


그의 경기가 끝나고 나서 경기장은 원래의 수준으로 돌아갔다. 덩치 큰, 이번이 첫 시합인 외국인이 태국인을 이겨서 술 취한 백인 관중들이 눈이 뒤집혀서 소리 지르고 환호했다.


이런 비슷한 광경을 10년 전 즈음의 치앙마이에서 보았었는데 그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9시에 시작된 경기는 자정을 넘겨서 마무리되었고 잔뜩 흥분한 체육관 사람들(태국인 코치, 외국인 학생 등)은 모여서 2차로 술을 마시러 떠났다.


이야, 참 거지 같은 시간이었어.



욕망이 여과 없이 날뛰는 공간과 시간이었다. 술에 취해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관객들은 링 위의 피 튀기는 싸움을 보며 환호했고 곳곳에서 대마 냄새도 진동했다. 로마시대의 검투사 경기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링 위의 선수들도 눈이 뒤집혀서 싸웠다.


경기를 보던 외국인 학생들 중 일부는 '나도 경기에 나가보고 싶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태국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다. 경기에서 이겨보고 싶다는 허영심에 불타오르는 외국인들이 이와 같은 술집 경기장의 경제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일 테니까. 몸무게도 제대로 맞추지 않는 서커스 같은 공연이나마 이기면 선수들의 욕구는 충족되고 체육관 비용, 물품 구매 비용, 입장료, 술값 등으로 무에타이 업계 종사자들을 위한 지갑을 활짝 열 것이다.


정말 세기말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하는 그런 거지 같은 시간이었는데 차라리 마음은 편했던 것은 왜였을까? 그래, 남의 눈치를 전혀 볼 필요가 없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면 되는 공간이니까.


남들과는 다른 방식이지만 나도 치앙마이에서 나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조금은 해보는 중이다. 나를 옥죄는 부모님의 연락을 거절하는 것을 실천했고 술을 안 마시고 있고 듣고 싶은 무에타이 수업도 양껏 듣는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나의 욕망이었다. 맨정신으로 정돈된 삶을 사는 것이 나의 욕망이었다. 


체육관 사람들이 거하게 취해가는 와중에 술 한방울 입에 대지 않고 거대한 욕망의 공간을 빠져나왔다.


맨정신에 오토바이를 몰고 새벽의 치앙마이를 달려 귀가했다, 맨정신인 이 기분이 참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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