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은 태국인, 한 명은 한국인으로 모두 여성이며 태국인 친구는 19살, 한국인 친구는 20살이다. 생일이 오기 전까지는 만으로 37세인 나와는 18, 19세 차이가 난다. 이 친구들이 태어났을 무렵 나는 이미 고등학생이었다. (!!!!!!!!!!!!!) 둘 다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만났다.
태국인 친구는 다니고 있는 대학에서 주최하는 미인대회스러운 학교 홍보대사 선발대회에 출전 중이다. 페이스북에 선발대회 페이지가 따로 있어서 들어가 보니 무슨 홍보대사를 이렇게까지 화려하게 뽑나 싶을 정도로 행사의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정말로 미인대회처럼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매우 큰 행사장에서 모델 워킹을 한다. 해당 대회에서 작년에 2등을 했다는 친구는 올해는 반드시 1등을 하고 싶어 하고 그래서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라고 한다. 서로 번역기를 동원해 가며 대화하는데 번역기로 보여준 단어가 'thin'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다 말랐는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참가자들 중에서 가장 끼도 많고 연예인 같은 포스를 지닌 친구여서 '얘가 아니면 누가 1등이지?'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나 보다. 작년에 1등을 하지 못한 이유를 찾다가 찾다가 기어이 자신의 몸을 탓한다.
이 친구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묘사할 생각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너는 지금 그대로도 아름답고 운동을 하고 싶다면 마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하렴'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한국인 친구는 가족과 치앙마이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왔는데 치앙마이 생활이 무척 즐거웠던 것 같다. 교육 비자를 받는 방법, 숙소를 구하는 방법 등에 대해 묻기에 알려주다가 약간의 진로 상담으로 이어졌다.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뭘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 어떤 것을 새로 시작해도 되는 나이니 걱정 말고 도전해 보라'라고 말해주었다. 무에타이를 재미있게 배웠고 나중에 시합도 나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지금 나이면 지금부터 2,3년을 집중하면 실제로 선수도 될 수 있는 나이다.
이 친구들에게 해준 말은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자존감은 유년시절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후천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그렇게 길러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알아서 자존감을 갖고 자라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 지점에서 나의 부모님은 나에게 전혀 자존감을 길러주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나는 자기혐오 속에 자랐고 나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다.
어려서부터 '쯧쯧, 저렇게 살이 쪄서 어디에다가 쓸까'라고 말하는 아빠로 인해 강박적으로 다이어트를 했고 이것은 몇 년간 음식을 먹고 토하는 폭식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것 말고도 아빠는 항상 '너는 나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나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렸고 이것은 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막았다.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대학교를 졸업하는 것까지는 대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해진 공부만 하면 되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기에 나를 거지같이 대하는 곳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하며 버텼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두려움은 술을 마시며 견뎠고 오랜 시간 동안 술에 의존하며 살았다.
아주 오래 전도 아니고 20대 초반의 나에게라도 말을 걸 수 있다면 나는 앞서 두 친구에게 해주었던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랬더라면 나는 강박에 휩싸여 운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새로운 것에도 더 자신감 있게 도전해 봤을 것이다. 폭식증도, 알콜 의존증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런데 뭐 이미 나의 20대는 지나가버렸고 30대도 곧 지나갈 판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어린 친구들에게 건넨 말이 소용이 없는 것일까?
분명히 소용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요즘의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 식단을 관리하며 운동한다. 지금은 몸이 불어난 상태지만 앞으로 2,3개월 안에 몸관리가 제대로 된다면 무에타이 체육관 코치들이 계속 건네는 시합출전 권유도 마다할 생각은 없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시합이 있으면 코치들이 돈을 벌 수 있기에 체육관 수강생들에게 계속 시합 권유를 하는 것이긴 하다)
하루 한끼는 이렇게 챙겨먹는다
한국에서 기존에 하던 실무자의 포지션이 아닌 리더십 포지션으로 채용 제안을 받았는데 예전 같았으면 '내가 그런 걸 어떻게 해?'라고 생각하며 뒷걸음질 쳤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입사를 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결정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적어도 내가 못하겠다며 발을 뺄 생각은 없다.
나는 절대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지금이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젊은 시기이다. 주위에서 나를 깎아내리려고 지랄 발광을 해도 나도 지랄 발광으로 되갚아줘야지. 한국에 돌아가면 나의 가능성을 깎아내리려는 사람 투성이겠지만 치앙마이에서 멘탈 관리를 잘하고 돌아가서 그것들을 다 깨부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