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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Feb 22. 2024

생각보다 재미있는 태국어 공부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에 온 지도 6개월이 되었다.


치앙마이 대학교 어학원에서 레벨1(쌩기초)의 태국어 과정을 수강하며 조금이나마 입이 트이고 태국어 글씨를 더듬더듬 읽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부쩍 태국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서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괜히 태국분들에게 말 한마디라도 걸게 된다. 태국어에 아예 관심이 없던 때와 비교하면 태국이라는 나라가, 태국인이라는 사람들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짜이런 ใจร้อน

어제는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다. 머리를 자르고 샴푸를 받는데 샴푸가 끝났다고 생각하자 나는 움찔거리며 빠르게 일어나려고 하고 이런 나를 미용사분이 다시 붙들어 앉혔다. 급한 내 마음과는 달리 미용사는 여유롭게 몇 가지 과정을 더 진행하고 나서야 샴푸를 끝내주었다. 샴푸가 다 끝나고 머리를 말리는데 아까의 내가 너무 급해 보였는지 미용사분이 어깨를 두드리면서 '사바이 사바이(천천히, 릴랙스 해라 정도의 뜻)'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이게 한국인들의 특성이야, 너무 급하지?'라고 답했다. 내 말을 듣고 미용사 분이 방긋 웃으면서 '우리 남편이 한국인이라 잘 알아, 나도 맨날 남편에게 사바이 사바이하라고 말해'라고 하며 한국인처럼 급한 성격을 두고 '짜이런'이라고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짜이는 마음이라는 뜻이고 런은 뜨겁다는 뜻. 딱 한국인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 반대의 말로 짜이옌이 있는데 옌은 차갑다는 뜻으로 태국처럼 더운 나라에서 '차갑다'는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로 차분한 성격을 뜻한다고 한다. 이렇게 실생활에서 배운 태국어는 단순히 암기를 했을 때보다는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찡~러어? จริงหรอ

태국인들과의 접촉이 가장 많으며 실생활 태국어를 가장 많이 사용해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무에타이 체육관이다. 주 6회 정도를 가서 2시간 이상씩 있다가 오니까 태국어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코치들과도 꽤 친해졌고 나도 계속 태국어나 문화에 대해 질문하니까 이제는 알아서 본인들이 먼저 알려주려고 한다. 요즘은 자주 오는 태국인 수강생들과도 안면을 트게 되어서 태국어 대화의 빈도와 수준이 매우 풍성해졌다.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태국어와는 또 다른 실생활 태국어를 접하게 된다. 이 중 가장 재미있던 것이 '찡~러어'라는 단어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정말?'이라는 뜻인데 누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에 대한 리액션으로 많이 사용한다. 말하는 톤이 익살스러워서 듣자마자 바로 배워서 요즘 잘 쓰고 다닌다.


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초반에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특히 태국어 문자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우울증이 극에 달해있어서 타인에게 전혀 마음을 열지 않았고 태국인들과의 교류에도 소극적이었다. 태국어를 배우기만 했지 실제로 써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도 진정이 되었고 태국어를 조금씩 사용하게 되면서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치앙마이가 열리는 기분이다. 진적 이랬으면 좋았겠지만 6개월 전의 나는 공황발작까지 일으킨 나의 마음을 돌봐주어야 의무가 있었고 혼자에 집중하며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마 그 시기에 마음을 잘 돌보았으니 지금 이렇게 나아진 것이리라.


내가 만난 태국인들은 장난을 좋아하고 작은 일에도 잘 웃는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다. 무에타이 수업에서 단체로 근력운동을 하는데 둥그렇게 모여서 다 같이 손을 잡고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자세를 만들라고 했다. 누군가의 발이 코치의 엉덩이에 닿았고 그러자마자 코치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뭐라 뭐라 말을 했다. 즉시 주변의 태국인들은 모두 빵 터지고 코치의 엉덩이에 발을 넣은(?) 태국인도 같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나도 상황 파악은 되니까 웃었는데 이들이 한 말을 더 자세히 알아듣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기도 했다.


나도 같이 태국어로 개그치고 싶다고!!!


누가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ㅎㅎ


최근 한국에 있는 회사와 온라인으로 간단한 업무를 진행하는 중인데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올라오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작은 일에도 장난치며 웃고 떠드는 환경에서 심리치료를 받다가 다시 원래의 환경으로 돌아가면 내가 버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는 요즘이다.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는(stressful) 태국어로 크리앗เครียด이라고 한다. 이 단어도 절대로 까먹기 힘들 듯.


누군가 체육관에 가져온 인형인데 귀엽다고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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