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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Feb 03. 2024

멍투성이

#치앙마이 일년살기

이렇게 몸에 멍이 많이 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두 다리의 정강이 앞쪽 부분과 오른손 아랫부분이 아주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보면서 놀랄 지경이다.


정강이 부분이 멍이 든 이유는 최근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반은 장난, 반은 진심으로 코치들과 나름의 스파링을 하다가 코치의 정강이와 나의 정강이가 정면으로 부딪혔기 때문이다. 정강이를 맞으면 정말 아프다.

*스파링 : 격투 종목에서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힘을 빼고 상대와 자유롭게 공격 연습을 하는 것.


스파링이라기보다는 무에타이 고인물인 태국인 코치가 웃으면서 내 공격을 다 막아내고 나는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공격에 성공을 해보려고 발악을 하는 것인데 정식 스파링이 아니다 보니 정강이 보호대 없이 하다가 이 사달이 났다. 멍이 든 상태로 무에타이 킥을 차고, 계속해서 코치와 스파링을 하다 보니 다친 곳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멍도 정강이 앞부분을 덮을 만큼 커져버렸다.


오른손의 멍은 옆 방의 소음에 항의하다가 벽을 손으로 치면서 생겼는데 이 상태로 무에타이 수업에서 계속 펀치를 날리니 멍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아침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시퍼런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래서 언제 이렇게 멍이 들었었는지 생각을 해봤는데 이 정도로 심하게 멍이 들었던 적은 아주 오래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시절, 아빠에게 심하게 맞아서 지금보다도 더 큰 멍이 들었었다.


이것은 내가 아빠에 대해 기억하는 가장 강력하고 선명한 기억이다.

어느날 저녁, 집에는 아빠와 나 둘만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뭔가 내가 또 말대답을 했던 걸까, 분노한 아빠는 나에게 엎드려뻗치라고 한 후 손에 야구 방망이같은 몽둥이를 들고 엉덩이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맞다가 너무 아파서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그니 아빠는 문을 부수고 들어왔고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바짝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자 더 이상은 때리지 않고 아빠가 물러났다는 그런 기억.


나는 그날 밤 한참을 숨죽여 벌벌 떨면서 울었는데 뒤늦게 들어온 엄마가 멍이 든 엉덩이와 허벅지에 후시딘을 발라주면서 '그러니까 왜 아빠 말을 안 들었냐'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이때를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웠다고 말해도 아빠는 내가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때린 것에 문제가 없다고 했고 엄마는 그래도 널 키워준 아빠고 아빠도 고생 많았다는 말로 내 말의 본질을 흐렸다.


아팠으면 미안하다 이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인데 아빠도 엄마도 그 말을 하면 누가 죽는 것처럼 절대로 그 말을 해주지 않았다.


그날 몸에 났던 멍은 몇 주가 지나고 사라져 버렸지만 마음에 든 멍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질 기미가 없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나는 고통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표현을 해봐야 살뜰한 보살핌이 돌아오지 않음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아니, 나는 고통스럽고 힘들어서도 안 되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표현에 의하면, 부모님이 이렇게 힘들게 고생해서 나에게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는데 내가 힘들다는 소리를 하는 것은 배부른 소리였다.


문제는 이것이 사회생활을 하면서까지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일은 일대로 도맡아 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를 못했고 업무의 결과도 인정받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잘했다고 티를 내지 않으면 회사가 먼저 알아서 내 고생과 성과를 인정해 주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더라.


오늘, 몸 곳곳에 든 멍을 바라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힘들고 아프다고 부모님 품에 안겨 한 번을 징징거리지 못해 보고 살았던 내가 꽤나 안쓰러웠다. 항상 고생은 부모님이 하는 거고 나는 힘들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오늘은 나에게 고생 많았다고 이 글을 쓰면서 말해주었다.


앞으로도 부모님이 되었건 사회에서 만난 그 누군가가 되었건 나에게 '너는 힘들지 않고 고생하지 않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다시 그런 상황에 마주한다면 그때는 그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렇지 않다'라고 말해야지. 아주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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