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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y 20. 2024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법

#치앙마이 일년살기

오랜만에 아주 인상적인 표정을 마주했다.


내가 다니는 치앙마이의 무에타이 체육관은 코치 네 명, 선수 세 명으로 구성된 조그마한 체육관이다. 코치 네 명 중 한 명은 체육관의 주인인데, 매일 나오지는 않는다. 코치 세 명이 주1회씩 쉬어가며 근무를 한다. 하여 코치 네 명이 전부 수업에 들어올 때도 있고 혹은 두 명만 있는 날이 있기도 하다. 코치의 수는 적은데 수강생이 많은 날에는 선수들 중 일부가 수업을 돕는다.


태국의 무에타이 체육관이 돌아가는 시스템은 코치와 수강생이 1:1로 공격 연습을 하는 'pad work'이 중심이 된다. 수강생 한 명당 최소 3분 4라운드 정도의 1:1 수업이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수강생이 많으면 코치들도 많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코치가 손에 pad를 들고 수강생과 수업하는 것을 pad work이라고 한다 (혹은 미트 훈련이라고도 함)


한국 같은 경우는 체육관에 코치가 한 두 명인 경우가 많아서 이 pad work을 충분히 진행하기 어려워서 코치는 방법을 알려주고 수강생끼리 연습시키는 시간이 더 많을 때가 있다.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운다면 경력이 족히 10년은 넘은 코치들과 1:1로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장받아서 수업의 질이 한국 대비 크게 차이가 난다고 느낀다.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우는 것은, 김치만드는 법을 한국에서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할까.


내가 다니는 체육관의 경우, 시합을 뛰는 현역 선수들은 코치로서는 초보라 pad work을 이끄는 기술이 부족하다. 실시간으로 수강생에게 어떤 공격을 할 지 주문하고 그 공격을 받아주어야 하는데 그걸 잘 하지 못 한다. 선수로서는 훌륭하지만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는 수련이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이번에는 아예 pad work을 처음 해보는 선수가 수업을 돕게 되었다. 선수로서도 초보여서 수업에는 참여하지 않았었는데 이날따라 수강생은 많고 코치는 적었다. 초보인 친구 포함하여 명의 코치가 있어서 코치들과 3분 1라운드씩 돌아가서 1:1 pad work을 진행했다.


그리하여, 초보인 친구와 pad work을 하는데 세상에 그의 표정은 자다가 꿈에라도 나올 것처럼 인상적이었다.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온 몸이 삐그덕거렸는데, 특히 얼굴은 너무 심해서 얼굴 근육이 완전히 굳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수업을 하는 코치가 아니라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평소에 다른 선수와 pad work을 하는 것은 종종 봤는데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손님'과 하는 것은 처음인 거라. 그래도 그는 포기(?) 하지 않고 나와의 3분 간의 pad work을 무사히 끝마쳤다. 아마 나보다 그가 더 힘들었을 3분이었을 것이다.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 입장에서 잘 하는 코치에게 배우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첫 시작을 함께 했다는 것이 그렇게까지 기분나쁜 일은 아니었다.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선수로서는 그는 매일 매일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고 소위 말해서 '뺑끼'를 치는 스타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처럼만 성실히 훈련한다면 몇 년 후에는 선수 경험도 더 쌓고 코치로서도 능수능란하게 수강생을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다른 말을 해주지는 못했지만, 속으로는 이 친구를 양껏 응원해주었다.


그리고 이 응원의 마음은 사실 내가 받고 싶었던 것이긴 하다. 나는 항상 뭐든 잘 해야 했고 못 하면 혼이 났다. 그게 너무 심해서 결국 나의 모든 행동의 목적이 '혼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을 정도다. 이 친구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나 자신에게도 따뜻한 응원을 보내는 것을 연습해봤다.


아니 이거 목적이 매우 순수하지 못했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인간이구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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