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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n 06. 2024

소소한 즐거움을 놓지 않을 것

#치앙마이 일년살기

어제 우울 증상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겪고, 부모님에게 전달할 책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약간의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책은 집중해서 빠르게 완성하려고 한다.


매주 목요일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청소를 해주는 날이라 방을 좀 정리해 두고 근처로 나와 식사를 하고 카페에 온 참이다.


숙소에서 청소를 해주는데 왜 미리 정리를 하냐고?? 청소는 바닥/욕실 청소 및 침대 시트를 교체해 주시는 정도만 해주시는데 개판이 되어있는 방을 보시면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겠는가. 더군다나 최근에는 우울한 증상 때문에 설거지조차 못하는 상태였어서 방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청소를 오시기 전 간단히 방을 정리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첫 번째 코스로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은 태국식 닭고기 덮밥인 '카오만까이'를 파는 곳이다. 카오만까이라는 이름 자체가 '밥닭'이라는 뜻. 원래 가던 집이 문을 닫았기에 새로운 집을 개척했는데 영어 메뉴따윈 없는 쌩 로컬 집이다. 구글렌즈로 번역을 돌려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주문하고 보니 뜻은 몰라도 읽을 수는 있기에 태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오만까이는 밥을 닭육수로 지어서 밥이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자극적인 음식에 속이 불편할 때 이것만한 음식도 없다
간판에 쓰인 글자가 카오만까이라는 걸 이제 읽을 수는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음식은 원래 다니던 집 비해서는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내가 약간 태국어를 썼단 말이지.


"스-깬, 다이 마이 카?"

(QR코드로 계산이 가능한가요?)


점원은 흠칫 놀라더니 나에게 계산이 가능한 QR코드를 보여주었고 내가 태국 은행 어플로 계산 후 영수증을 보여주니 직원이 '오, 제법인데'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웃음이 너무 무해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이런 웃음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밥을 먹고 건너편 빵집에서 간식을 사는데 빵을 두 개 사니 값이 50바트다. 방금 밥 값이 60바트였는데 빵이 밥값이랑 맞먹는다. 태국은 로컬 식당의 밥값이 가장 저렴하고 빵이나 커피가 더 비쌀 때가 많다.


아몬드 크로아상이랑 레이즌 대니시를 샀다. 빵 하나에 900원꼴이면 한국 대비는 괜찮은 건가.


빵을 사들고 도착한 곳은 단골 카페. 오늘은 여기서는 안 시켜본 메뉴인 카페 모카를 시켜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다. 주인님께서 극진히 친절하신 것은 덤.


에어컨 하나 없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야외 공간에 자리 잡고 글을 쓰려는데 자리 옆 화단에서 개구리인지 뭔지 모를 녀석들이 계속 '깩,꼭,깩,꼭' 울어댄다. 아, 개구리가 아니라 찡쪽(게코)인가? 얘네 울음소리는 꼭 백색소음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우울할 때는 뭘 해도 기분이 바닥이지만, 아주 작은 소소한 것들이 잠시라도 기분을 좋게 해 준다. 한국에 비해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더 많이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앙마이에 머무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단점이라고 하면 고통이 심해질 때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없다는 것 정도.


태국도 생각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젊은 층의 우울증 문제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발병률이 30%가 넘는 한국에 비하면 아직 꼬꼬마 수준이다) 태국인들은 지나치게 외부에 보이는 모습에 집착하기도 해서 다들 SNS만 붙잡고 사는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어디서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든가 작은 일에도 다 같이 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나보다는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감명을 받을 때가 있다.


어제 잠시 산책을 하는데 온 가족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아이가 너무 즐겁게 웃고 있더라, 보고 있는 것 만으로 나도 즐거웠다


이러다 언제 또 기분이 바닥을 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편안한 상태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믿고 지내봐야겠다.


소소한 즐거움을 놓지 말아야겠다.


나의 세상을 구원하는 건 별게 아니라 이런 것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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