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우울 증상 때문에 한바탕 홍역을 겪고, 부모님에게 전달할 책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약간의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책은 집중해서 빠르게 완성하려고 한다.
매주 목요일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청소를 해주는 날이라 방을 좀 정리해 두고 근처로 나와 식사를 하고 카페에 온 참이다.
숙소에서 청소를 해주는데 왜 미리 정리를 하냐고?? 청소는 바닥/욕실 청소 및 침대 시트를 교체해 주시는 정도만 해주시는데 개판이 되어있는 방을 보시면 얼마나 당황스러우시겠는가. 더군다나 최근에는 우울한 증상 때문에 설거지조차 못하는 상태였어서 방 꼴이 말이 아니었다. 청소를 오시기 전 간단히 방을 정리하며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첫 번째 코스로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간 곳은 태국식 닭고기 덮밥인 '카오만까이'를 파는 곳이다. 카오만까이라는 이름 자체가 '밥닭'이라는 뜻. 원래 가던 집이 문을 닫았기에 새로운 집을 개척했는데 영어 메뉴따윈 없는 쌩 로컬 집이다. 구글렌즈로 번역을 돌려서 음식을 주문했는데 주문하고 보니 뜻은 몰라도 읽을 수는 있기에 태국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카오만까이는 밥을 닭육수로 지어서 밥이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자극적인 음식에 속이 불편할 때 이것만한 음식도 없다
간판에 쓰인 글자가 카오만까이라는 걸 이제 읽을 수는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음식은 원래 다니던 집 비해서는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내가 약간 태국어를 썼단 말이지.
"스-깬, 다이 마이 카?"
(QR코드로 계산이 가능한가요?)
점원은 흠칫 놀라더니 나에게 계산이 가능한 QR코드를 보여주었고 내가 태국 은행 어플로 계산 후 영수증을 보여주니 직원이 '오, 제법인데'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웃음이 너무 무해한 느낌이었는데 나는 이런 웃음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밥을 먹고 건너편 빵집에서 간식을 사는데 빵을 두 개 사니 값이 50바트다. 방금 밥 값이 60바트였는데 빵이 밥값이랑 맞먹는다. 태국은 로컬 식당의 밥값이 가장 저렴하고 빵이나 커피가 더 비쌀 때가 많다.
아몬드 크로아상이랑 레이즌 대니시를 샀다. 빵 하나에 900원꼴이면 한국 대비는 괜찮은 건가.
빵을 사들고 도착한 곳은 단골 카페. 오늘은 여기서는 안 시켜본 메뉴인 카페 모카를 시켜봤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이다. 주인님께서 극진히 친절하신 것은 덤.
에어컨 하나 없이 선풍기만 돌아가는 야외 공간에 자리 잡고 글을 쓰려는데 자리 옆 화단에서 개구리인지 뭔지 모를 녀석들이 계속 '깩,꼭,깩,꼭' 울어댄다. 아, 개구리가 아니라 찡쪽(게코)인가? 얘네 울음소리는 꼭 백색소음 같아서 마음이 편해진다.
우울할 때는 뭘 해도 기분이 바닥이지만, 아주 작은 소소한 것들이 잠시라도 기분을 좋게 해 준다. 한국에 비해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더 많이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치앙마이에 머무는 것은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단점이라고 하면 고통이 심해질 때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갈 수 없다는 것 정도.
태국도 생각보다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에 젊은 층의 우울증 문제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울증 발병률이 30%가 넘는 한국에 비하면 아직 꼬꼬마 수준이다) 태국인들은 지나치게 외부에 보이는 모습에 집착하기도 해서 다들 SNS만 붙잡고 사는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어디서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감 넘치는 포즈로 사진을 찍는다든가 작은 일에도 다 같이 아이처럼 웃는 모습을 보면 적어도 나보다는 삶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서 감명을 받을 때가 있다.
어제 잠시 산책을 하는데 온 가족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면서 아이가 너무 즐겁게 웃고 있더라, 보고 있는 것 만으로 나도 즐거웠다
이러다 언제 또 기분이 바닥을 칠 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이 편안한 상태가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걸 믿고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