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나에게 아빠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밥상을 뒤엎는 모습이었다.
5살이나 되었나 보다. 나와 한 살 차이의 남동생을 앉혀두고 아빠는 젓가락질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나 동생 중 누가 젓가락질을 못했던 걸까? 내가 기억하는 당시 사건의 마지막은 아빠가 밥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랬을까? 밥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어린애들 앞에서 밥상을 뒤엎는 건 너무 과한 일인데 왜 나의 기억 속에는 그러한 기억이 남았을까?
최초의 기억을 뒤로하고,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내 생각에 아빠는 나르시시스트의 성향이 있거나 혹은 당신의 삶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었던 것 같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을 가족에게 풀었다. 엄마,남동생,나 모두 각자 다른 방식으로의 아빠의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어렸을 시절, 적어도 중학생 시절까지는 아빠는 말보다 손이 빨랐다. 손에 뭐가 잡히건 그걸 들고 때렸다. 공사일을 했던 아빠인지라 집에 몽둥이 감이 많았다는 것은 웃픈 일이라고나 할까.
언어적 폭력은 더 빈번했다. 신체적 폭력은 그래도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는 사라졌지만 언어적인 폭력은 내가 20대 중반이 되어서도 지속되었다. 참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셨는데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어디 감히
미친년
개같은 년
싸가지 없는 년
니까짓게 어디서 감히
넌 나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다
생일, 태어나게 한 나에게 감사해라
니가 나보다 많이 배웠다고 감히 이 아빠를 무시하는 거냐?
미친년이라고 한 상황은 정말 별 이유가 없었다. 중학생 때였나, 아빠에게 집에 온 외할머니를 모시고 집 뒷 산으로 함께 산책을 다녀왔다고 말한 것이 전부다. 이 말을 듣던 아빠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주식 차트를 보고 있었는데 나에게 나지막이 '미친년'이라고 말했고 나는 온몸이 얼어붙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상황이었어서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장모님을 모시고 산책을 했다는 것이 질투가 났던 것일까 아니면 주식이 떨어져서 화가 났던 것일까.
버거킹에 관한 웃픈 일화도 존재한다. 중학생 시절의 어느 날, 아빠가 어디서 버거킹 무료 쿠폰을 가져와서 나에게 주었다. 집이 그렇게 가난한 편은 아니었을 텐데, 그 이전까지 나는 버거킹에 가본 일이 없었다. 쿠폰을 받아 들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주문을 해봤다. 이게 뭐라고 나름 첫경험이라 가슴이 두근그렸다. 그렇게 매장에 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들어왔는데 별안간 아빠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이 싸가지 없는 년, 애비는 한 입도 안 주고 지 혼자 쳐먹고 들어와!!"
아빠는 포효했다.
화살을 심장에 맞는 기분이었다. 기분 좋게 햄버거를 먹고 들어왔지만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는 내 모든 것을 싫어한다고 느꼈다. 심할 때는 '아빠는 내가 숨 쉬는 소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것도 욕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아빠는 야구를 좋아했고, 아빠를 따라 나도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했다. 중학생 또는 고등학생 시절, 마루에서 기아의 경기를 보다가 누군가 안타를 쳐서 별로 크지 않은 소리로 '와!'하고 환호를 했다. 그걸 듣고 있던 아빠가 번개같이 방에서 마루로 뛰어나오더니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나는 주눅이 든 채로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웬걸, 아빠가 곧장 다시 마루로 나와 TV를 켜더니 예능 프로그램을 틀고는 큰 소리로 웃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빠는 단지 내가 웃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였을까, 나는 아빠의 이런 행동이 너무 힘들어서 이솝우화에 대해 말한 일이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는 해와 구름의 이야기였다. 아빠에게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비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해였다'라고 말했다. 당시의 나는 꽤 어렸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따뜻함이라는 것 말이다.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빠의 반응은 기억난다. 아빠는 내 말을 들은 채도 하지 않고 어디서 감히 아빠에게 훈계를 하느냐고 화냈다.
이런 일화를 늘어놓자면 끝도 없을 텐데, 문제는 이 모든 사건이 단 하나도 잊히지 않고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내 인생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다.
매보다 말이 아팠다. 아빠에게 맞아서 생긴 몸의 상처는 회복이 되었는데 말로 입은 상처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낫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