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아빠는 항상 나에게 '여자는 출가외인이다, 결혼하면 끝이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어린 내가 그 말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알 수 없는 소외감을 느낀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1남 1녀 중 맏딸로 태어났고 동생은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 없는 살림에 아빠는 간호사들에게 팁을 쥐어주었다고 했다.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집에서 심부름을 도맡아 했고 아빠는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했다. 아,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때는 카메라를 사기도 했다. 1년 차이 밖에 안 나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아빠가 여성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은 엄마를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말로 끊임없이 엄마를 공격해 댔다. 두 분 모두 중학교 졸업으로 학력이 같은데 아빠는 스마트폰 같은 것을 좋은 것을 쓰면서 엄마에게 '너는 이런 거 할 줄 모르지'와 같은 말을 실제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장난이라기보다는 조롱으로 느껴졌다. 엄마의 집, 즉 나의 외갓집을 무시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엄마의 집은 가난한 집, 못 배운 집이었고 자신의 집은 양반집이었다.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집에 여자가 둘이니 매달 엄마와 내가 생리를 하지 않겠나. 가끔 생리혈이 변기 주변에 떨어져 있을 때도 있었는데 이걸 보면 아빠는 눈이 뒤집어졌다. '더러운 년'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와 나의 속옷 상의, 즉 브라를 두고는 '젖가리개'를 치우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빠는 이런 식으로 짜증을 낼 때 말 꼬리를 올리고 질질 끈다. 누가 봐도 짜증이 가득한 소리로 몇 십 분에 걸쳐 수십 번 비난의 말을 내뱉는다. 싫다고 하면 뒤쫓아와서까지 본인의 말을 계속한다. 이런 아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서 말을 멈추게 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은 적어도 수십 년 이후의 일이었다.
아빠가 엄마와 나에게 행한 말과 행동은 엄청난 혐오인데 대체 왜 아빠는 그렇게도 엄마와 나를 싫어했을까. 여자를 혐오한 것일까 아니면 엄마와 내가 아빠가 생각하는 여성상이 아니어서 혐오한 것일까. 애초에 엄마랑 결혼은 왜 한 것일까. 애초에 엄마와 왜 사귄 것일까.
하지만 여자를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절대로 밥은 여자가 차려야 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밥을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너무 싫었지만 밥을 차리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기 때문에 세상 싫은 얼굴을 하고 반찬을 꺼내 밥을 차렸다.
그래, 언젠가는 아빠에게 '아빠는 청학동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아마 청학동에 사시는 분들도 이러지는 않으실 텐데, 아빠는 여성에게 칠거지악이 적용되던 조선시대에서 사는 것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 얼굴이 싫어서 거울도 쳐다보지 못했다.
중학생 이후로는 부쩍 살이 쪘는데 당연하게도 아빠는 이런 나를 두고 쯧쯧 소리를 했다. 끌끌 혀를 찼다. 20대 중반, 다이어트에 성공해 15kg를 뺀 적이 있는데 이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타인에게 나를 칭찬하는 것을 들었다. 내 인생 아빠에게 들어본 처음이자 마지막 칭찬이었다.
이것이 각인된 건지 이후 나는 다시 살이 찌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고 몇 년 간은 음식을 먹고 토하는 폭식증에 시달렸다.
나는 단 한 번도 내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