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by 송송당

아마도 엄마는 회피형의 사람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항상 입을 꾹 다물고 고통을 씹는 모습이었다.


엄마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나를 임신하고는 다섯 살 많은 아빠와 결혼했다. 아마 다른 남자와 사귀어 본 적도 없지 않을까. 앞서서 계속 언급한 매우 예민하고 까다로운 남편의 가스라이팅을 오랜 기간 당해야 했다.


시골에서 상경하여 꿈을 펼쳐볼 새도 없이 엄마는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고는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그러다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가 카드값을 많이 쓰고는 그게 연체가 되어서 아빠가 갚아준 것이다. 20여 년 전에 500만 원이었으면 적은 돈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빠는 연체된 카드값을 대신 내어주었지만 아주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절대로 이 일을 잊지 않았다. 아주 큰 소리를 내며 엄마의 자존감을 잘게잘게 짓밟았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이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아 길러야 했던 부인에 대한 연민이나 존중은 찾아볼 수 없었다.


틈만 나면 자신이 절대로 이 일을 잊지 않았음을 엄마, 더 나아가 온 가족에게 알렸다. 심지어는 아빠가 외국에 살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 즉 나의 고모와 통화를 하면서까지 당시의 일을 언급하며 엄마를 욕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무시하고 조롱했다. 아, 이 정도면 원래 밝은 사람이었다고 해도 회피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엄마는 방어적인 사람이 되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엄마는 식당 일을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고 엄마가 쓸 돈은 따로 벌었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자신의 재정에 대해 절대로 오픈하지 않았다. 아빠의 돈은 아빠의 돈, 엄마의 돈은 엄마의 돈. 이렇게 구분이 되어서 한 집에 살지만 아빠와 엄마가 한 가족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는 아빠에게 그 어떤 도움도 구하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법을 알려달라든가 하는 것 말이다. 아빠에게 도움을 구하면 죽을병에 걸릴 것처럼 행동했다.


카드값 사건 이후인지 전인지, 아빠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아주 자주, 집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30대는 불안해 보였다. 연년생 출산 후 엄마도 살이 쪘는데 이걸 빼겠다며 에어로빅 같은 것을 하러 다니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난다. 시골에서 상경해서 제대로 사회생활도 해보지 못하고 두 아이를 낳아 기르기 시작한 것이 고작 20대 초반. 남편은 지독하게도 가부장적이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어 주지 않으면 큰 소리를 내는 사람. 내가 엄마였다면 그런 삶을 선택하지도 않았겠지만 그런 삶이라고 판단 되었다면 곧바로 어떤 식으로든 그 삶에서 빠져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엄마는 종종 내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영등포의 백화점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했어서 그걸 타면 공짜로 백화점에 갈 수 있었다. 그 버스를 타고 있는 내가 종종 기억에 떠오른다. 백화점에 가도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니 가끔 티셔츠나 바지 같은 것을 하나 사 입을 뿐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분노일지 허무감일지 모를 것을 화려한 쇼핑몰 안에서 풀어보려고 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되었다. 나는 우울하고 공허하면 쇼핑몰에 가서 무엇을 사지 않아도 정처 없이 걷는다. 엄마에게 배운 게 아닐까.


엄마가 행복하게 웃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엄마는 고통을 씹으며 굳은 얼굴로 의무적으로 본인의 할 일을 했다. 내가 첫 생리를 하자 학교로 찾아와 생리대를 전달해 주었고 성적이 떨어지자 학원에 보냈고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도시락을 싸 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와 대화를 나누어 주지는 않았다. 나에게 친구가 있는지, 연애는 해봤는지, 꿈은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묻지는 않았다.


그나마 나누는 대화는 전부 명령체였다. 이 지점에서는 아빠나 엄마나 같은 결이었다. 아마 엄마가 아빠를 보고 배웠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에게는 화가 났을 수도 있다. 내가 생겨서 한 결혼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대부분 나의 의견은 묻지 않고 엄마가 원하는 것을 나에게 명령했다. 엄마는 나에게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고통을 보며 알 수 없는 부채의식을 지고 있던 나는 엄마의 명령을 들어주려고 노력했지만 점점 힘에 부쳤다.


엄마의 명령의 정도가 심해지며 나는 내 삶을 잃고 있다고 느꼈다. 원래도 겁이 많은 엄마는 아빠와 살며 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는 불안한 사람이 되었고 갱년기를 지나면서 불안의 증상은 더 심해진 것 같다. 엄마는 갈고리를 던져 나를 낚으려 했다. 목에 목줄을 채워두고 엄마의 옆에 두려고 했다. 어느샌가 나는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고 엄마가 느끼는 불안 그대로를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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