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by 송송당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친구 한 명이 있다. 흔히들 T형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이다. T는 Thinking(생각)의 약자로 이 유형의 인간은 흔히 사실과 원칙을 중시하고 주관적 보다는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에 반해 나는 스스로를 F형 인간이라고 느낀다. F는 Feeling(감정)의 약자로 이 유형의 인간은 공감과 배려를 우선시하고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주관적인 가치를 중요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는 이 일에 대해서 대화하고 위로받기를 바라지만 T형 인간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원인을 분석해서 해결책을 제공해주려고 한다. 나는 대화 정도 나누면 되는데 친구는 나에게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어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친구와 나의 인연은 거의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서로의 다른 성향 때문에 몇 번은 크게 다투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대화는 끊기지 않았고 결국에는 '아, 우리가 이렇게 다른 성향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힘들다고 징징거려도 친구는 칼같이 '어쩌라고?'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뒤로는 해결책을 찾고 있다. 이 친구에게 애정이란 '해결책을 찾아주어 나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다름을 이해하고 그래서 편하다.


하지만 아빠만큼은 어떻게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빠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만 졸업한 후 서울로 올라와 기술을 배웠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 과정에서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본인 말고도 형제자매가 7명이 더 있었지만 왜 아빠가 유독 집안의 빚을 갚는데 더 많은 힘을 쏟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예상하건대, 아빠가 빚을 갚는 과정에서 다른 형제자매들이 이 사실을 잘 알아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는 돈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 되어갔다. 이렇게 보면 아빠는 나와 같은 F형 인간인 것이 확실하고, 정서적인 인정과 보살핌을 받아야 힘을 내는 사람일 텐데 본인의 성장 과정에서 이것이 매우 결핍된 상태로 자라났던 것 같다.


슬프게도 아빠는 당신의 가정을 꾸린 후에 어떤 착각에 빠졌다. 자신의 가족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사랑을 줄 것이라는 착각.


태양이라는 가수의 노래 중 '넌 나만 바라봐'에는 이런 가사가 등장한다.


[가사]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baby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lady

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을 마셔도

혹시 내가 다른 어떤 여자와 잠시 눈을 맞춰도

넌 나만 바라봐


나는 이 가사를 생각할 때면 항상 아빠 생각이 난다. 아빠는 당신이 그 어떤 행동을 해도 가족은 자신에게 절대적인 애정과 존경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대체 이건 어떤 마음일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아빠의 인생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돈'이었기에 자신이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준다는 행위와 사실이 모든 행동보다 앞선 가치를 지닌다고 여겼던 것 같다.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데 감히 나에게 반항을 해?


반항이란 것이 웃긴데 단지 아빠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전부가 반항으로 간주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한다는 식으로 부모님에게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졸라본 적도, 학교에서 큰 문제가 생겨서 부모님을 불려 가게 한 적도 없었다.


그저 아빠의 말에 절대적 복종을 하지 않았다는 것. 그 사실에 아빠는 뚜껑이 열려서 본인의 체력이 다 하는 순간까지 힘주어 자식들을 때렸다. 매를 들 때의 아빠의 눈빛은 정당한 훈육을 위한 눈빛이라기보다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의 눈빛이었다.


아빠가 힘들게 일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고생을 한 번도 폄하한 적은 없다. 남들 앞에서 아빠의 학력이나 샷시 기술자라는 직업이 부끄러웠던 적도 없다. 아빠는 나를 대학까지 보내주었고 비싼 치과 진료, 해외 어학연수를 보내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아빠의 폭력에 대한 '합의금'같이 느껴졌다. 이것이 옳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했다.


내가 집과의 연락을 끊을 당시, 아빠에 대해 힘들었던 점에 대해 말했었는데 아빠는 이런 대답을 했다.


'내가 힘들게 벌어서 너에게 비싼 치과진료까지 해주었는데 니가 나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이 답을 듣고 나는 내 생각이 그렇게까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짐짓, 깨달을 수 있었다. 아빠 역시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아빠가 나에게 해준 것들은 대가성이 있는 것이었구나.


아빠의 행동이 옳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무리 아빠가 힘들게 살았다고 해도 아빠의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고 자식에게 대가를 바라는 것도 미성숙한 삶의 태도다.


그걸 알고 있어도 나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뭔 짓을 해도 절대로 치울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가 온 몸을 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빠가 번 돈으로 양육을 받았음에도 아빠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은 나 자신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렇다고 아빠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고 싶지도, 행동할 수도 없었다.


F형 인간이 T형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데, 아빠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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