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연락을 끊게 된 짧은 스토리

#부모님에게

by 송송당

가족을 만나지 않은지 2년인가 3년인가.


오늘도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


"날씨도 더운데 잘 지내고 있냐 건강 조심해라"


엄마의 연락을 받을 때는 뜨거운 것에 데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감정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엄마의 카톡 메시지만 봐도 극도로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의 연락에 길게 답변을 할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아주 간략하게 답변을 하고 연락을 마무리한다.


엄마와 유대관계를 맺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은 없다. 엄마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당신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아 전업주부로 살아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무뚝뚝함을 넘어서서 가부장적이었다.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나는 엄마와 친밀한 관계라는 느낌을 한 번도 갖지 못하고 자랐다.


그러다 내가 20대 중반이 된 시점부터 엄마의 태도가 묘하게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첫 시작은 엄마가 나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대신해달라는 것들이 많아졌다. 연말정산, 쇼핑, 여행 알아보기 같은 것이었다. 인터넷 사용과 관련된 것이니 나도 최선을 다해 도우려 했다. 다만 스트레스를 느낀 부분이 요구사항이 빠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재촉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무서운 표정을 하고 나에게 빠르게 처리해 줄 것을 명령했다. 내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엄마의 요구 카톡이 왔고 나는 엄마의 요구사항을 먼저 해결하지 못하면 다른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내가 20대 중반이면 엄마의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충분히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사용법을 배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카톡과 유튜브를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사진기로 사용했다. 인터넷 뱅킹조차 사용하지 않았다. 내가 대신해주는데 배울 필요가 없었을 수도 있고 어떤 문제라도 생길까 무서웠을 수도 있다. 조금이라도 뭘 잘못하면 남편이 옆에서 그렇게 비난을 하고 조롱을 하는데 애초에 잘못하거나 틀릴 일을 안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부탁뿐만 아니라 엄마는 자신의 불안한 감정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20대 후반이었을까, 나의 동생과 관련해서 엄마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가 있었다. 엄마는 시간 관계없이 나에게 카톡을 보내 하소연을 했다. 새벽에도 연락이 왔다. 당사자인 아들에게는 하지 못하고 그 스트레스를 나에게 쏟아냈다. 확실히 그 시기 이후부터 엄마에게 카톡이 왔다는 알림만 떠도 소스라치게 놀라기 시작했던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 앞에서는 '미안하다'라고 했지만 언젠가 가족이 모여서 술을 먹는 자리에서 나에게 '너는 무섭다, 내가 너 아니면 누구에게 그러겠느냐'와 같은 말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언젠가는 '내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느냐'까지 추가되었는데 이 말은 특히나 엄청난 죄책감을 심어주어서 엄마의 연락을 완전히 무서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단은 내가 집에서 독립을 하고 난 이후에 벌어졌다. 나는 독립을 30대 초반, 꽤 늦게 한 편이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나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이벤트를 만들어서 나를 불러내려고 했다. 주말에도 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엄마의 연락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엄마가 연락이 올 것 같은 시기가 오면 하루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가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해주지 못하면 엄마의 표정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마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은 그대로 나에게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느끼기에 엄마가 원하는 것은 '결혼 안 해? 그러면 집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면서 내 불안을 받아줘'였고 난 숨이 막혀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의 연락이 좀 덜해질까 싶어서 '대학원 준비를 한다'는 거짓말까지 쳐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는 원래 겁이 많은 사람이고, 갱년기를 거치면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남편이나 아들은 딸인 내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며 손 놓고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라도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어린 시절에 만들지 못한 유대관계의 간극은 너무도 크고 멀었다. 나는 엄마에게 온전히 기대본 적이 없는데, 엄마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기대려고 하고 있었다.


엄마의 요청을 다 들어주는 것도, 들어주지 못하는 것도 숨이 막혔다. 아빠라는 폭력의 기억에서 이제 겨우 벗어나려고 하니 엄마가 갑자기 등장해서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운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내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엄마라는 큰 산이 나를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아니 대체, 나는 언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것인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나는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건가? 나는 끔찍하게도 속으로는 부모님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야 하는 건가? 그냥 내가 나쁜 사람인 건가?


물론 이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인 것을 안다. 엄마의 삶은 엄마의 선택의 결과고 내가 죄책감을 느끼고 엄마에게 사로잡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 = 불효 =나쁜 것'이라는 세계에 갇혀 있었기에 부모님에게서 벗어나는 삶은 극심한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회사에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더해져서, 나는 30대 중반의 어느 날 엄마에게 '한 동안 집에 가지 않겠다'라는 선언을 했다. 도망을 간 것이다.


이것은 문제를 정면돌파하는 방법이 아니었어서 나는 도망을 갔어도 1분 1초도 편한 마음으로 지낼 수 없었다. 나의 모든 곳에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있었다. 도망간 곳에 낙원은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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