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두려움

#부모님에게

by 송송당

인간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낯선 이방인에게 적대적이기도 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 모르니까 두려워서 공격하고, 모르니까 두려워서 답을 만든다.


나에게는 '엄마' 역시 내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 중 하나다.


엄마와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유대관계를 맺어본 일이 없다. 아빠 역시 그렇지만 아빠의 경우는 명백히 나에게 신체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했고 오히려 그것이 '아빠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엄마의 경우는 전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나 부채의식 같은 것이다. 내가 엄마에게 어떤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지만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서 죄책감은 내가 가졌다.


아빠가 어땠는가 하면, 얼마 전 설명하기 딱 알맞은 영상을 찾았다.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에서 신구 선생님이 연기하신 캐릭터가 부인 역의 나문희 선생님에게 성질을 부리는 말투가 딱 나의 아빠와 비슷하다. 발동이 한 번 걸리면 20년 전 일까지 다 끌고 와서 엄마 탓을 하며 비난한다. 좁은 집 안에서 엄마가 아빠의 잔소리를 피할 공간 같은 것은 없다. 아빠의 성이 다 찰 때까지 계속해서 톤을 높이고 말끝을 질질 끄는 비난 섞인 잔소리를 들어야 한다. 종종 엄마의 자존감을 짓밟는 말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두 분 모두 중학교 졸업으로 학력이 동등한데 아빠는 엄마에게 '너는 이런 것도 모르지?'와 같은 말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며 학력으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를 엄마를 조롱하는 것으로 푸는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내가 봐도 이건 너무 한다 싶었는데, 엄마는 오히려 아빠를 두둔했다. 아빠가 나와 동생 앞에서 엄마를 비난하는 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나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너희 아빠는 고생한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걱정했는데'와 같은 말로 아빠를 감싸 안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나는 뭔가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나는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고 중,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엄마가 나의 학업을 관리하거나 학교에 찾아와 상담을 하는 일도 없었다. 동네 보습학원비 정도만 받아서 공부하고 성적은 항상 잘 받아왔다. 대학교도 수시전형비 7만 원을 받아서 전형 통과해서 알아서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유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전 과정에서 엄마와 나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의 대화 말고 좀 더 깊은 대화 말이다. 이를테면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연애를 하는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장래희망이나 꿈이 있는지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가 묻지 않으니 나도 엄마에게 묻지 않았다. 엄마와는 한 집에서 오래 살았지만 나와 가까운 존재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을까. 졸업을 하고 진로에 대해 엄청난 방황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역시나 엄마와 대화하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말해본 기억도 없다. 처음으로 독립을 할 때도 집계약을 끝내고 지나가듯이 '나 이제 나가 살 거야'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지의 존재이면서 나에게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갖게 한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게 된 이후로 갑자기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부분 '불안'이라는 감정이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깜짝 놀라 대응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나에게 감정적인 요구를 하는 엄마에게 큰 부담을 느낀 것이 집과의 연락을 끊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불안에 떨며 나에게 연락을 계속하는 엄마를 그 당시에는 견딜 수 없었다.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내가 엄마에게 읽은 감정은 명백히 불안이었다.


대체 무엇이 엄마를 그렇게 불안하고 공포스럽게 만든 것인가.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커져서 그랬던 것일까? 엄마가 나에게 원한 것은 무엇일까?


이것에 대해 묻고 조율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고 싶었는데 나나 엄마나 둘 다 대화의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면 대놓고 얼굴에 실망의 표정을 띄웠고 나는 그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솔직히 말하지 못했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내가 힘들 때 엄마에게 기대 보거나 위로를 받아본 일이 없다는 것이 엄마와의 대화의 단절을 더욱더 깊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치앙마이에서 머물며 공황발작이 와서 죽을 것 같아 엉엉 울 때도 이 악물고 버텨냈지 집에 연락할 생각 같은 건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앙마이에서 극도의 우울감을 겪고 죽음에 대한 엄청난 공포에 시달리고 나서야 처음으로 '엄마도 그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 듦이 엄청난 공포로 다가와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그저 딸인 나를 붙잡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내가 엄마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약간의 도움 정도는 기꺼이 나누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엄마 역시 대화를 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 엄마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듣고 그걸 참아낼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나에게 일방적인 요구를 하고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대신 내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까?


그걸 모르겠어서 역시나 두렵다. 모르는 것은 역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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