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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애썼다

#부모님에게

by 송송당

무작정 부모님에게 전달할 글을 쓰는 중이다.


애초 계획은 빠르게 다 쓰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는 쉽지 않다. 상처 난 곳을 들쑤시는 기분이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너무 지친다. 운동을 조금 쉬는 중인데 운동을 쉬어도 누가 온몸을 몽둥이로 때린 것 같이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 글은 부모님에게 하소연이나 원망을 하는 글도 아니고 그저 어떤 일이 있었고 내가 어떤 감정이었는지 정리하는 글이다. 최대한 담백하게 쓰려고 하는 중인데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확 올라와서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다.


내 머릿속에서는 수십 년째 아빠와 엄마라는 영화가 상영 중이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던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가끔은 이러다가 죽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다.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시절에는 이 감정을 어찌할 줄 몰라서 감정에 완전히 잡아 먹혔다. 몸은 다 성장했지만 정신상태는 아빠에게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터지고 방에 쓰러져서 덜덜 떨면서 울던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부모님에게 보고 배운 것처럼 술에 빠져들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 역시 술을 마시고 남동생 또한 그러하다. 내 눈에는 다들 술을 즐긴다기보다는 술을 현실을 잊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생은 술을 마시는 정도가 심각해서 누군가 말려야 했지만 부모님은 동생을 말리지 못했다.


인도나 네팔 등지로 정처 없이 떠나기도 했다. 최소한의 비용을 갖고 하루에 5천 원짜리 방을 다니면서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집에서 멀어지고, 몸은 힘들수록 마음은 편했다. 10여 년 전 여행에서도 나는 글을 쓰려고 했고 끊임없이 부모님을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실패한 글쓰기를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쓸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일을 오래 하지 못하고 계속 이직을 했고 좋은 회사를 골라서 가기보다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받아주는 곳이라면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내가 나의 가치를 깨닫고 회사를 '고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부당한 일이 생겨도 속으로 화만 낼뿐 속 시원히 대응을 하지 못했다. 아빠와 겪었던 일이 사회생활에서 그대로 반복되었다. 아빠는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면 화를 냈다. 화만 내면 다행이지, 종종 손찌검이 이어졌다. 엄마도 결은 달랐지만 엄마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죄책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결과물은 비슷했다. 나는 의사소통, 대화, 토론 같은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고 자라왔고 금방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갈등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는가에서 비롯되는데 나는 깔끔하게 그냥 포기해 버렸다. 모든 것을 다 놓고 이직을 해버렸다.


사람도 믿지 못했다. 나에게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부모님이라는 '예제'가 있었다. 부모님에 대한 신뢰가 없는데 남은 어떻게 믿느냐 말이다. 여기서 신뢰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해도 부모님에게 수용을 받을 것이라는 유대관계에 기반한 신뢰다. 안타깝게도 나는 부모님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만 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느꼈다. 타인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 깊은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다. 내가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 관계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이 조금이라도 나에게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면 칼같이 관계를 끊었다.


30대 초반에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것을 했을 때도 상담사님께 정확히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상담사님은 나에게 '애썼네요, 살려고 애썼어요'라는 의외의 말을 건넸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이 후드득 떨어졌다. 평생 비난만 받다가 처음으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나의 방황이 실패가 아니라 도전의 결과물이었다니.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 말을 마음속에 새기고 위로받을 것이다.


나는 자존감을 갖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끝없이 방황했다. 하지만 포기만큼은 하지 않았다. 이번생은 망했다고 주저앉는 대신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해질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은 것도 시도의 일환이었다. 아마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면 나는 확실히 더 심한 중증 우울증에 빠져서 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살아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지켜낸 삶인데 지금 이렇게 우울증에 패배하여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다.


이제는 끊임없이 재생되는 부정적인 감정의 영화 상영관을 아예 부숴버리고 싶다. 그것은 부모님의 반응과 관계없이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내려놓으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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