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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Nov 11. 2023

37세, 칭찬받고 싶은 나이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에 도착한 지 어언 3개월에 다다르는 시점, 세 번째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태국의 무에타이 체육관 역시 운동을 가르치는 스타일이 다 다르고 나에게 더 맞는 체육관을 찾기 위해 한 달씩 다녀보며 다양한 체육관을 경험하는 중이다.


첫 번째 체육관은 위치와 시설면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으나 점점 한 명의 코치가 나를 담당하여 운동을 가르쳤는데 그 코치의 경력이 너무 짧아서 코칭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린 코치 친구는 정해진 시간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무에타이 초보라면 위치, 시설, 가격적인 측면에서 이곳을 가장 추천한다)


두 번째 체육관은 시내에서 다소 멀긴 하지만 분위기가 나쁘지는 않아서 10회권을 끊어서 수업을 들었다. 하지만 시설이 딱히 좋지 않고 야외라 모기에 시달렸다. 이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수업의 수준이 높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이곳 코치들도 1:1 미트 훈련 시간에 3분의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태국에서 무에타이를 배울 때는 그룹수업이어도 필수적으로 코치와 1:1로 미트훈련(pad work)이 포함된다. 코치가 손과 허리에 보호장구를 차고 학생에게 공격하도록 지시해서 공격을 연습시키는 훈련이다. 1:1 미트훈련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코치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수강생은 많은데 코치가 부족할 경우 코치들도 힘들어하고 1:1미트훈련의 퀄리티도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체육관을 고민해 보다가 구글맵으로 발견한 곳이 있어 찾아갔는데 관광객보다는 태국인들이 더 많이 오는 체육관이었고 시설도 깔끔하고 좋았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너무 많지는 않으니 코치들도 다소 여유가 있어 보였다.


king muaythai gym


첫날에는 두 명의 코치가 있었는데 1:1 미트훈련에서 나를 몰아붙이기보다는 내 자세를 교정해 주려는 모습이 보였다. 꽤나 만족스러워서 그날 30회짜리 수업 쿠폰 구입.


이 정도면 꽤나 깔끔한 시설 수준이다


두 번째 날 수업에서는 첫날에 못 본 코치 한 명이 와 있었다. 이 코치님과 1:1 미트훈련을 하는데 내가 곧잘 하니까 코치의 눈이 뭔가 반짝이는 것이 보이는 거라. 연신 good이라는 말을 연발했는데 말뿐만 아니라 눈빛도 '오 이것 봐라 꽤 하는데?' 라며 흥미로운 눈빛이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서 출력을 높였다.


같이 수업 듣는 태국인 여성이 와서 내 허락도 없이 나를 촬영하고는 영상을 보내주었다...고 고맙...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 여러 명의 코치들과 미트 훈련을 했는데 나에게 이런 눈빛을 보내준 코치는 처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는데 코치님이 나를 불러 세우고는 스파링을 하자고 하는 거라. 살살할 거고 자세를 잡아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해서 링으로 들어갔는데 10분이 넘는 시간 동안 6가지 정도의 공격 루틴을 가르쳐 주었고 이것이 거의 프라이빗 레슨 수준이어서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추가 수업을 들었다.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코치의 눈빛, 집에 가려는 나를 불러 세워서 추가 수업을 시켜준 것.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칭찬으로 받아들여졌고 무에타이를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욕심이 솟아올랐다.


한국에서는 마땅한 무에타이 체육관이 없으니 크로스핏을 했었다. 한 체육관을 일 년 정도 다녔는데 데드리프트 100kg 정도는 거뜬히 드는 수준의 나를 두고 체육관 관장은 '무게충'이라며 놀렸다. 더 많은 무게를 들도록 자세를 가르쳐주거나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조롱이나 한 것이다. 그 녀석은 체육관에 오는 여성 관원들에게 알게 모르게 성희롱을 하는 녀석이었다. 나는 머리도 숏 컷에 덩치도 크고 나이도 많은 여성 관원이라 내 돈은 필요가 없었나? 그 이후로 크로스핏을 열심히 할 생각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그 체육관은 다시는 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나 중학생 시절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아빠에게 이런 말(혹은 편지)을 했다. 이솝우화 중에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로 내기를 한 해와 구름 이야기가 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건 결국 따뜻한 햇빛이었지 비바람이 아니었다. 아빠도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달라. 어린 나이에 느끼기에도 아빠가 나에게 하는 행동은 가혹했고 비난의 연속이었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아빠에게 이런 말까지 건넸지만 당연히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그 이후로는 다시는 아빠에게 이런 말을 건네지 않은 것은 당연하고.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도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고, 이렇게 치앙마이에 와서 생활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 시절에 내가 아빠에게 했던 말이 맞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37세이건, 3세이건, 60세이건 언제나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따뜻한 햇살 즉, 칭찬일 거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나 말고도 많은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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