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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30. 2023

내 속도는 시속 40km

#치앙마이 일년살기

오늘은 오토바이를 타고 내가 평소에 무서워하던 길을 달리는 데 성공했다.


치앙마이 님만해민이라는 동네에서 센트럴페스티벌이라는 쇼핑몰로 가는 길이다. 구글지도상에서는 길이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방면의 길은 일반 도로와 '슈퍼 하이웨이'라고 부르는 고속도로가 나란히 붙어 있고 차선도 3차선에 나들목도 여러 개라 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슈퍼 하이웨이를 타면 교통 신호가 없어서 매우 쾌적하게 달릴 수 있는데 나처럼 오토바이 최고속도 40km인 운전자에게는 지옥이다. 작년에 치앙마이에 왔을 때 슈퍼 하이웨이에 잘못 진입했다가 최선을 다해서 50km로 달렸으나 주변 차량들에게 클락션으로 항의를 받으며 공포에 떨어야 했었다. 그때 이후로 이쪽 길은 쳐다도 보지 않았었다.


내가 오늘 달린 길


올해는 1년 일정으로 치앙마이에 왔고, 오토바이를 구매해서 타고 다닌 지도 거의 한 달이 되어서 운전에 매우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계속 작년에 성공하지 못했던 그 길이 떠올랐고 때마침 센트럴페스티벌 쇼핑몰 지하에서 커피 박람회도 열린다니 겸사겸사 도전에 나섰다. (커피 박람회는 사실 별거 없었다...)


이 길을 달리면서 가장 중점으로 둔 것은 슈퍼 하이웨이에 들어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갈림길을 잘 타야 해서 최대한 집중하며 달렸고 생각보다는 쉽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에 왜 그렇게까지 공포스러웠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쉬웠다.


이로써 나는 치앙마이에서 완전한 이동의 자유를 얻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혼자서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서 흐뭇하게 웃었다.


치앙마이 시내는 40km의 속도 제한이 있지만 교통 정체 구간을 제외하고 다들 나보다 적어도 30% 이상 빠르게 달린다. 태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오토바이를 타니 다들 이 정도 타는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한 손으로 전화를 하면서 달리는 분들도 봤다.


*태국 분들이 오토바이에 익숙하다고 했지 무사고라고는 안 했다. 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중 74%가 오토바이 운전자다. 연간 15,000명쯤 된다고 한다. 태국의 많은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과속, 음주운전, 헬맷 미착용 상태로 달린다.


나는 그렇게 빠르게 달릴 수 없고 그렇게 달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30~40km대의 속도를 유지하고 왼쪽 가장자리에 붙어서 철저하게 방어운전을 한다. (태국은 차선이 한국과 반대 방향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까지 태국 곳곳에서 오토바이를 운전하면서 사고를 당한 일은 없다.


신기하게도 '나도 저렇게 달리고 싶다'라는 마음을 가져본 일은 없다. 50km쯤으로 달리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최선의 속도와 방법을 알기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나의 페이스를 유지한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운전 스킬을 익혀가면서 내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길까지 달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것.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 이직한 회사에서 3주 만에 퇴사를 했다. 그 회사에서는 입사한 지 3일 만에 팀장이 나를 불러서 '왜 일을 이렇게 하느냐, 경력직인데 실망이다'라는 말을 했다. 연봉계약서의 잉크도 마르기 전인데 입사 3일 만에 성과를 내기를 바랬다. 치앙마이에서의 오토바이 운전으로 비유하자면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시속 80km로 달리면서 슈퍼 하이웨이도 타고 치앙마이 곳곳에 도달하기를 요구한 것으로 보면 되려나. 당연히 나도 경력직으로 들어갔으니 빠르게 업무에 적응해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빨라도 너무 빨랐다. 3일이라니.


한 달 정도의 시간만 주어졌더라면 팀장이 원하는 것을 다 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이것 말고도 여러 상황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여 빠르게 퇴사했다. 그 자리에 나만한 경력직을 찾아서 앉히기란 힘든 일일 텐데 그 팀장은 구인공고부터 다시 내야겠지.


최고 속도가 시속 40km여도 조금 늦을 뿐, 내가 원하는 곳에는 모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시속 80km의 속도를 내야 한다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1. 내 속도를 알고 2. 이 속도로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믿고 3. 나에게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에게 단호히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속도로 달렸을 때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믿어달라.


나는 3번은 잘하지 못해서 퇴사를 선택했다. 다음번에 다시 직장생활의 기회가 생긴다면 3번도 잘 해낼 자신이 있는데 꼭 그렇지 않아도 좋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내 속도를 유지하지 못하고 위험하게 과속을 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한다면 직장생활을 할 생각이 없다.


나와 잠시 마주쳤던 그 팀장도 이걸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모든 사람이 다 자신과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없고 사람마다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속도가 다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팀장의 역할은 팀원들이 자신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이라는 것을.


어찌 되었건 난 이제 치앙마이에서 못 갈 곳이 없게 되었다. 능력치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오늘 달린 길은 아니고, 다른 외곽도로. 구글지도에는 길이 하나인 것처럼 나오지만 가보면 3차선이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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