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정부사업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by 송송당

커리어 대부분을 정부사업을 확보하고 운영하는 매니저로 일했다. 치앙마이까지 와서 왜 이런 글을 쓸까 생각해 보았는데, 1년 후 내가 무엇을 하건 과거가 어떠했는지 짚고 넘어가는 것도 의의가 있을 것 같아 생각을 정리해 본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부사업은 다음의 구조로 나뉜다.


정부'지원'사업 : 정부가 지정한 특정 조건을 충족하여 인건비, 운영비, 컨설팅 등을 지원받음. 주로 창업 초기 기업.

정부사업 : 정부가 진행하는 사업의 수행 권한을 획득하여 정부를 통해 매출을 일으킴. 정부 사업 하청. 여기에는 기술 연구를 진행하는 R&D 사업도 포함된다고 본다.


분류는 당연히 정확하지 않겠지만 내가 거의 10년간 경험한 사업의 종류는 이러했다. (나는 주로 창업, 교육 분야의 정부사업 진행)


스타트업과 정부사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다.


많은 스타트업이 정부사업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지원받는다. 그런데 어째, 이 사실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약간 숨겨놓은 애인 같은 관계라고 하면 더 정확할까? 정부로부터 엄청난 도움은 받지만 정부사업에 참여한다는 사실이 스타트업의 이미지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는 건가? 이런 느낌이었다. "우리는 정부사업 안 합니다."라고 못 박는 대표들도 더러 보았다. 정부사업이 무슨 벌레라도 되는 양.


창업 초기에는 1원 한 푼이 아쉬운데, 기획력과 문서 작성력이 있다면 초기창업패키지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사업화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창업 초기 기업에 다양한 사업 참여의 기회를 주는데 거의 창업 8년 차가 지나가면 사업 참여의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회사가 안정화되고 기술력을 갖추게 되면 많은 스타트업들이 R&D 사업에 도전한다. 사업별로 금액은 천차만별이지만 큰 사업은 몇십억 원 수준을 넘어선다. 이런 사업에 선정되면 직원 인건비, 연구에 필요한 각종 장비 구매, 임차료 등을 정부 자금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이렇게 얻어낸 연구 성과는 온전히 회사의 경쟁력이 되고 다음 라운드의 투자를 받을 때도 유리하다. 물론, 성과를 내면 해당 사업을 기획한 정부기관과도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서 수년이 지나도 정부기관으로부터 온갖 연락을 지속적으로 받게 된다. (각종 간담회 참석, 설문조사 참여 등)


혹은 R&D가 아니라 정부 사업을 직접 수주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를테면 고용노동부의 내일 배움 카드 교육 운영 기관 선정 공고에 응모하여 선정되어 교육을 운영하고 고용노동부에서 그 비용을 받는 것이다. 원래 내일 배움 카드 사업은 스타트업과는 무관하다고 여겨졌으나, 코딩을 가르치는 사업이 추가되면서 거의 대다수 교육 스타트업이 해당 사업에 뛰어들어 연에 1억 도 벌기 어려웠던 회사들이 매출 100억을 찍고 있다.


어떤 종류의 정부사업이건, 자금의 출처가 세금이기에 상당히 복잡한 서류 작업이 수반되는데 반대로 그 서류 작업 절차에 익숙해지고 나면 B2C 시장에서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것 대비 쉽게 매출을 일으킬 수 있기도 하다. 언제인가, 정부사업을 진행한 후 증빙 사진을 포토샵으로 해서 냈다가 걸린 업체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지 않았는가. 이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을 할 수 도 있는 것이 정부사업이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가 경험한 스타트업은 대부분 정부사업과 실제 사업을 별개로 보았다. 정부사업은 돈이 필요해서 하는 것이고 개발자 등 주요 직원들은 정부사업과 관련하여 그 어떤 리소스도 못 쓰게 하는 대표도 있었다. 진짜 중요한 일은 따로라는 것이다. 정부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의 값어치가 일반 사업 매출과는 다른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더러 경험했다.


정부사업이라고 어디 외계인의 용어를 사용하여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업과 똑같이 기획하고 운영하고 정산한다. (살짝 정산이 힘들 뿐) 예를 들어서 예쁜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든다라는 정부사업이 있다고 하자. 예쁜 스마트폰 케이스를 만들기 위한 일을 하면 되고 이 사업 진행에 대한 보고와 정산을 정부가 정한 틀에 맞추어해 주면 된다. 원래 사업 운영을 잘하고 있으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많은 스타트업이 원래 사업 운영을 잘하는 일을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정부 사업 계획서에 앱을 출시하겠다고 작성하여 사업에 통과하면, 실제로 그 앱을 개발하는 업체는 몇 개 없다. 애초에 계획서부터 잘못 작성한 것인데, 그렇게 써도 사업 심사에 통과한다. 앱을 개발하지 못해도 왜 개발하지 못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사업비 환수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사업비를 100% 환수하려면 거의 소송을 진행하는 수준의 법적 공방이 이어져야 해서 어지간해서는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부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업에 참여하는 대상들이 고통스러울 수준으로 비효율적인 보고 방식을 고수한다. 요즘 세상에 한글파일이 웬 말이며 참여자의 서명을 종이에 받아서 PDF 파일로 내는 것도 웬 말인가. 정부 기관별로 사업을 신청하고 운영을 관리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보유하고는 있지만 UI UX 수준은 처참하다. 사업의 성과지표도 결국 보여주기식으로 설정되어서 짧은 기간에 무리한 성과를 내는 것을 강요하며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한 성과여서 관리 감독하는 정부 기관이나 참여하는 스타트업이나 결국 '노오력'을 하는 수준으로 사업을 마무리하고 넘어간다. 세금이 낭비되는 것이 맞다.


혁신적인 사업을 진행한다는 스타트업에서는 직원들이 정부사업 운영은 못하겠다고 들고일어나고, 결국에는 정부사업만을 담당할 직원을 따로 뽑는다. 그렇게 뽑힌 직원은 스타트업의 조직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인의 일에 자부심도 갖지 못한 채 스타트업에서 시간을 낭비한다. 다들 데이터 분석 한다는데 한글 파일로 결과 보고서 작성하고 있는 내가 어떻게 느껴지겠나.


이런 상황에서 동기부여는 스스로 해야 했기에 다음과 같은 생각을 정리했다.


1. 나는 사업의 확보부터 운영, 사업비 정산까지 A to Z를 총괄하는 운영 전문가이다. 사업계획서부터 결과보고서까지 다 쓸 수 있는 인재이며 이런 인재는 흔하지 않다. 이를 통해 추후 내가 창업을 할 때도 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2. 나는 정부사업을 제대로 운영함으로써 공공서비스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다.


특히 2번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겼다. 정부사업을 꿀 빠는 사업이라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만났지만 대한민국의 정부사업은 조롱할 수준이 아니다. 정부사업이 없다면 길가의 쓰레기를 누가 치우겠는가?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거리의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주위에 사람들이 계속 쓰레기를 버리고 결국 주변 환경이 폐허가 된다는 이론이다. 정부사업이 아니라면 민간산업이 거리의 쓰레기를 나서서 치우겠는가? 나는 대한민국의 정부사업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인 덕분이 거리가 깨끗하다고 믿는다.


정부사업이 혁신될 것이라는 믿음은 없지만 그래도 그 의의에 공감하기에 최선을 다했다. 같은 회사 동료들에게도 욕을 먹을지언정 내가 운영하는 사업은 제대로 운영하려고 노력했다. 혼자서 너무 많은 운영 범위를 커버하느라 녹초가 되었지만 덕분에 사업계획서 작성, 사업 운영, 마케팅, 회계 등 건드리지 않아 본 분야가 없다.


나라도 내 노고를 알아주면 되는 게 아닐까.


스타트업과 정부사업에 대해 생각해 본 결론은 퍼주기 식의 정부지원사업은 없어지는 게 업계 발전에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업을 제대로 운영할 마음도 없는 기업에 돈을 퍼주는 대신 그 돈으로 공원에 벤치 하나 더 설치하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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