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일기쓰기
어제 꿈에 부모님이 나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부모님이 내가 사는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사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잠시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변화하기 위해 치앙마이에 왔지만 나는 여전히 부모님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는구나.
내가 소위 말하는 K 장녀였기 때문이었을까? 부모님은 끊임없이 내 모든 것을 지적했고 나는 지적당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살았다.
아빠는 90% 정도의 비율로 내 행동을 비난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폭력을 행사했는데, 생각해 보니 엄마도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감시하고 비난했다. 이를테면 끊임없이 내 외모를 지적하였고 늘 나에게 '여자 옷'을 입을 것을 주문하였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 옷'을 입는 것도 아니었다. 편한 옷을 좋아하는 것뿐이었는데 엄마는 옷을 살 때마다 가게 점원에게 이것이 '여자 옷'인지 물었다. 내가 엄마를 살갑게 대하지 않으면 '너는 무섭다, 딸이 원래 엄마를 챙기는 것이다, 내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겠느냐'와 같은 말을 했고 나는 아빠보다도 엄마 앞에서 더 크게 무기력해졌다.
물론 나는 부모님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지 않았다. 대기업에 들어가지도, 결혼하여 손주를 안겨주지도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독립을 하고도 부모님과 같이 산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독립 이후로 엄마는 각종 이유를 만들어서 함께 살 때보다 나에게 더 많은 연락을 했고 원래 챙기지 않던 기념일까지 나와 함께 챙기기를 원했다. 집에 오라는 말을 거절하고 집에서 쉬기라도 하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고 쉬면서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느샌가 엄마의 연락을 받으면 긴장부터 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절에 집에 가지 않는 것은 거의 죄악에 버금가는 일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남동생은 명절에 거의 집에 오지 않았다. 집에 갈 때마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갔는데 가면 엄마와 아빠는 동시에 나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어디가 아프다, 무엇을 사고 싶다, 다른 집 자식들은 어떻다더라.
(부모님은 내가 정직하게 직장생활만 해서는 벌 수 없는 금액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고 내가 부모님에게 결혼 자금 같은 걸 받을 일도 없으니 그 재산을 그대로 노후에 쓰시면 된다. 나는 대학 졸업 이후 1원 한 푼도 부모님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 오랜 시간 폭력을 행사한 아빠에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듣지 못하고 함께 식사를 해야 했고 엄마에게는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제공하였다. 집은, 확실히 나에게 지옥이었다.
그렇게 집, 회사의 스트레스를 벗어나 이제는 다른 삶을 살겠다며 치앙마이에 왔건만 어제 꿈에 부모님이 나온 것이다.
고통 속에 무너져 내려가면서까지 나라도 부모님을 챙겨야 한다는 이 마음은 무엇으로 부를 수 있을까? 무엇이 되었건 나는 내 인생 대부분을 부모님을 생각하며 살았고 그 삶에서 '나 자신'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나로서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어제 본 인스타 웹툰에서 한 여성 작가가 출산 후 살이 많이 쪄서 주눅이 들었는데 작가님 아버지가 뭐가 어떠냐고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는 내용을 보았다. 작가의 아버님은 작가님이 어떤 모습이건 상관없이 그녀가 당신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애정을 준 것이다.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일이라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마음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기분이 좋겠지?
나는 나 자신이라는 이유로 계속 비난받고 나 자신이 아니라 부모님이 되어 살라고 종용받았다. 내가 당신들의 뜻과 달라도 부모님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날이 과연 올까?
그래도 처절한 마음으로, 나는 내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어 바라건대 삶도 이전의 모습과는 바꾸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이것 자체로 나의 변화를 위한 시작일 거야. 스스로를 조금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