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 의존증이 분명했을 나는 꽤 여러 번 금주를 시도했으나 길어야 2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회사 스트레스는 술을 끊지 않을 너무도 훌륭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이번에 이렇게 오래도록 금주에 성공한 까닭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한 번 겪어본 공황발작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이고 둘째는 주 4회씩 하는 무에타이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운동 끝나고 집에 오면 7시 즈음인데 힘들어서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한다.
집에 와서 골골거리면서 주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는데, 내가 치앙마이 관련 영상을 많이 찾아봤는지 유튜브만 켜면 태국 관련 영상이 가장 먼저 뜬다.
어제는 백종원 님의 태국 음식 여행 영상이 떴다. 나는 그분을 좋아하고 훌륭한 사업가라고 생각하며 그분의 영상을 즐겨보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이 이러니만큼 어제 본 영상은 많은 생각을 들게 하였다.
그러니까, 그와 그의 팀이 방콕의 식당에서 즐겁게 술과 식사를 즐기는 편이었다. 나도 작년에 마셔본 태국 브랜디인 '리젠시'를 시켜서 드시는데 너무 맛있으셨나 보다, 리젠시를 따르는 장면을 따로 촬영해서 클로즈업에 슬로우 모션을 걸었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같은 연출.
제작진은 최고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비난의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이 장면은 명확히 푸드 포르노였고 요식업으로 사업을 하는 이 분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끊임없이 매출을 일으키도록 하는 책임이 있는 CEO니까.
재미있는 것이 이 영상을 보고 나서 바로 뜬 영상이 알콜 중독에 대한 영상이었다는 것이다...(무섭다 유튜브 알고리즘) 한국사회가 얼마나 술에 관대한지와 그래서 많은 젊은이들이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술의 위험에 계속 노출되어 있다는 내용이었다. 영상에 소개된 30대 초반 여성의 경우 20대 초반부터 매일 술을 마시고, 회사에서도 텀블러에 따라 몰래 마시고,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자살 시도를 해도 병원에 보내드린 후 술을 마셨다고 한다. 지금은 병원 치료 중인데 자신을 못 믿어서 퇴원하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 그녀의 몸과 마음은 조금이라도 편안해졌는지, 마음이 많이 쓰였다. 나는 회사에서까지 술을 마셔본 적은 없지만 주 5회 이상 술을 마신 적은 있다. 약속을 잡고 마신 것이 아니라 퇴근 후 집에서 2시간 정도를 정해두고 술을 마신 후 다음날 출근을 위해 기절하는 식이었다.
술이 이만큼 위험하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술 광고가 금지되며, 혹시 가능하더라도 음주 장면이나 음주 후 기분이 좋음을 표현하는 장면의 송출이 금지된다고 했다. 예를 틀어서 맥주를 마시고 '캬하'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시간대의 예능에서 알콜 없이는 살지 못하는 연예인이 소주로 탑을 쌓는 장면을 그대로 방송한다. 알콜 중독자임이 분명한 분인데 한국 사회에서는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재미있거나 멋진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어제 본 리젠시 따르는 영상은 사실 애교다. 이제 유튜브에는 술만 마시는 것을 보여주는 유튜버들도 수두룩하고 어떤 유튜버는 양주 700ml 한 병을 한 번에 마시는 퍼포먼스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태국 치앙마이에 살면서 금주를 하는 나는 어제 리젠시 영상을 보면서 침을 꼴깍 삼켰다. 다행히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이 10분은 족히 걸어 나가야 하는 거리에 있으며 브런치에도 지금 금주 중이라고 썼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12월에 한국에서 지인이 놀러 올 예정인데, 그전까지는 확실히 금주를 이어가고 지인이 오면 내가 얼마나 절제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할 예정이다.
미디어, 광고는 인간에게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같다. 치앙마이 도착 초기, 대형 옥외 광고판에 걸려 있는 아이스크림 광고를 보고 그 아이스크림을 찾아서 먹은 적도 있었다. 백종원님 채널의 리젠시 영상을 본 사람들 중 태국에 여행 왔을 때 리젠시를 찾는 비율이 몇 %가 될까?
이 광고를 보고 말차에 팥이 들어간 저 아이스크림을 찾아서 사 먹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품을 광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뷰티 산업을 위해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정해놓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칭송하고 음식 산업을 위해 전방위적인 푸드 포르노가 제작된다. 내가 이 체제를 전복하겠다 이런 의미는 아니고 술 때문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힘들었던 사람이라 이제는 이런 영상을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술을 적당히 즐길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나는 꽤나 술이 나를 마시는 상황을 경험했었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많은 것을 이루어내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아지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나 자신을 토닥여주려고 한다.
작년인가, 회사 생활로 인해 너무 힘들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첫 세션에서 상담사님께 나의 방황의 역사에 대해 말씀드렸다. 대학교 졸업 이후 장기 배낭여행 두 번을 가면서 커리어 시작이 늦어졌고, 취업 후에도 여러 번 이직한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더니 상담사님이 이렇게 말씀 주셨다.
송송당님 (그때도 편한 상담을 위해 이 닉네임을 사용했다)은 살기 위해서 애쓰셨네요. 많이 애썼어요.
이 말을 듣고 울컥 눈물이 쏟아져 나왔고 지금도 그렇다. 취업도 못하고 여행을 가고 취업 하고도 계솤 이직을 한 것을 시간 낭비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든 환경을 바꾸어서 힘듦을 이겨내려고 한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니.
나는 포기하는 사람인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는 사람인 것이다.
금주 3주 차, 마음 상태는 많이 안정되었다. 어제인가 불안한 감정이 다시 올라오려고 했지만 금방 가라앉혔다. 3주 전이었다면 그대로 엉엉 울거나 숨이 차올랐을 상황인데 아주 금방 그 감정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얼굴의 부기도 많이 빠졌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 교육비자에 필요하다고 해서 여권사진을 새로 찍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매일 맥주 2캔은 마실 때라 얼굴이 팅팅 불어있었다. 눈빛도 흐리멍텅했다. 지금은 조금이나마 얼굴의 전체적인 부분이 또렷해졌다.
언젠가 또 나의 정신상태가 불안해졌을 때, 리젠시 영상을 다시 보게 된다면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깨끗한 정신상태를 기억해 본다면 조금은 더 빠르게 무너짐의 상황에서 회복할 수 있으려나?
지금은 술의 유흥을 카페로 돌렸다. 술을 조절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환경이 중요한 거니까...유튜브를 끊어야 하나 그런 고민. (시작은 창대했으나 결론은 소소한 오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