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에게
어느 순간부터일까, 부모님이 '효도'라는 협상의 카드로 '죽음'을 내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우울증 증상과 함께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며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기 위해 힘들게 버티는 중이다.
부모님 모두 입만 열면 죽는다 소리를 할 정도로 심한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에게 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엄마는 나에게 '내가 살 날이 얼마나 남았다고'라는 말을 했고 실제로 내가 없으면 무엇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런 거 못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빠는 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일부러 새햐얗게 만들고는 가족의 단톡방에 시골 선산을 다녀온 이야기를 꺼내며 자신이 죽으면 묻힐 곳을 보고 왔다는 말을 했다. 자신들은 이제는 늙어간다는 것을 시위하듯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너희는 내 옆에 붙어서 효도를 해라.
대체 왜 효도라는 개념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강요되어야 하는 걸까. 효도가 부모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이것은 사랑의 한 종류일 텐데 사랑이 왜 이렇게 공포스럽게 느껴져야 하는 걸까.
부모님이 자식들을 지극히 사랑해 주었다면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자라났을 텐데.
우울함이 극에 달했을 때는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내가 부모님보다 먼저 죽으면 이런 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은 이것을 노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지극히 평범한 반응이겠지라며 생각의 방향을 돌려보려고 하는 중이다. 부모님도 두려우니 이러셨겠지.
내가 부모님이었다면, 아무리 두려워도 뒤에 홀로 남겨지고 역시나 죽음을 맞이하게 될 나의 자녀들을 위해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것이지 겁먹을 것이 아니다. 나이와 관계없이 삶의 즐거움을 찾아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런 메시지를 나의 자녀들에게 전달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이런 모습을 돌이켜보면, 언젠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아 부모님의 나이대를 맞이하게 되어도 극심한 두려움뿐일 것 같아서 힘들다.
지금 이 순간 두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두 분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결혼도 하지 않고 손주도 안겨주지 않으며 자신들을 돌보지도 않는 나의 탓이라고 할까 봐 마음에 큰 돌덩이가 얹어진 기분이다.
물론 고통의 근원은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걸 막지 못하는 것 때문임도 알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옆으로 다 치워버리고 그 생각의 근원을 파고들면, 부모님이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어린아이 한 명이 울면서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 아이의 행복은 누가 바래주는 걸까. 그건 지금의 나 자신 뿐인 걸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는 길은 참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