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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n 17. 2024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사놓고 일 년 동안 안 읽다가 하루 만에 다 읽어버렸다.


책은 약간의 생물학적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술술 읽히는 편이다. 학문적 이야기보다는 작가 자신이 얻은 삶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라 어려운 내용은 그런갑다 하고 넘겨도 책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책은 삶의 방향성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고통받던 작가가 어떤 학자에게 꽂혀서 그의 생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작가가 방향성을 잃은 까닭은 한국 정서에서는 '뭐?'하고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여성인 작가 본인이 찰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여성과 바람을 피워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이것이 지나가는 장난 같은 것이라 생각했고 남편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격한 방황을 하게 된다. 한국 같았으면 이런 내용을 책에 넣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그랬다고 해도 '니가 뭐 잘한 것이 있다고 이걸 책까지 써?'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 뻔하다.


작가가 꽂힌 학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학자로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창립 초대 총장을 지내기도 한 당대 매우 잘 나간 유명 학자다. 작가가 그에게 주목한 것은 그가 끊임없는 삶의 역경을 맞이했음에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죽고 자식이 죽고 자신이 평생 모아 온 어류 샘플이 지진으로 훼손되어도 끄떡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작가 자신은 한 때의 바람(?)으로 이혼당한 것 만으로도 이렇게 힘든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떻게 그렇게 뚝심 있게 포기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걸어 나갔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가 역경을 헤쳐나간 방법을 이해하게 된다면 자신도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파헤치는데, 작가가 다다른 결말은 그녀의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그는 작가가 생각한 것만큼의 영웅은 아니었다. 되려 그 반대였다.


여기서 '우생학'이라는 학문이 등장하게 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굉장히 특이한 인물인데 전쟁에는 반대했으나 인간을 차별하는 우생학에는 열정적이었다. 전쟁에 반대한 이유도 평화보다는 전쟁을 통해 우수한 유전자의 고귀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결국 열성 인자들만이 살아남아 후대를 이어가면 인류의 수준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까닭이다. 본인이 사랑하던 형이 전쟁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그것이 그에게 큰 충격이 되었을 수도 있다.


우생학은 인간도 다른 종처럼 우수한 형질을 선별하고 개량하여 인류 전반의 유전적인 품질을 향상할 수 있다고 믿는 유사과학이다. 애초에 인간의 형질에 우성과 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극단적인 차별인가. 당대에 대학 총장까지 지낸 유명인사인 그의 열성적인 지지 하에 미국에서는 우생학이 실제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준에 근거하여 열성으로 판단된 사람들을 수용소(?!)에 집어넣고 불임수술을 시행했다. 나치야 뭐야.


작가는 그의 일생을 돌이켜보고 뒤쫓으며 결국 그가 신봉한 우생학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우생학은 당시 발표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그 영향을 받은 바도 크다. 생명체가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할 수 있다면 인간도 인위적인 선택에 의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웃긴 게 우생학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찰스 다윈의 사촌이란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찰스 다윈이 말하려고 했던 것은 다양성의 중요성이었노라 말한다. 다윈은 인위적인 선택을 하지 말라고 했다. 진화의 방향성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진화의 모습은 그것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애초에 옳고 그른 모습이라는 것은 없다. 다윈은 유전자에 다양성을 불러일으키는 '변이'를 칭송했다. 다양성을 갖춘 유전자 포트폴리오가 진화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말했다. 오히려 동질성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다양성을 제거하고 동일해진 집단은 외부 위험에 취약하게 되어 언제 절멸할지 모른다. 그러니 인위적으로 좋고 나쁨을 정하고 나쁨을 제거하려고 한 우생학은 틀렸다.


작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목매단 어류, 분류학이라는 학문까지 걸고넘어진다. 이것은 작가의 독창적인 주장은 아니고 '자연에 이름 붙이기' 라는 또 다른 책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몸 담은 '분류학'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분기학'이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어류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기학은 잘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작가가 하고싶은 말이 기존에 진실이라고 믿던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임은 이해했다.


분기학을 통해 어류가 존재하지 않는 분류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후 작가는 이것을 자신의 삶에도 적용하여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 책에서는 '물고기를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표현을 쓰는데 물고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옳다고 믿었던 믿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작가는 물고기를 포기하고 그간 자신을 괴롭힌 전남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으며 결국 새로운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한다.


참 솔직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본인의 불륜으로 인해 시작된 고통이라는 상황에서 이런 결말을 만들어 내다니. 작가가 이 정도로 자신의 삶에 솔직했기에 결국 깊은 깨달음까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사실 나도 대학생 시절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학년 1학기 생명과 과학이라는 교양수업에서 생명체가 다양성 확보를 위해 '감수분열'이라는 것을 했다는 내용을 듣고 다양성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거의 17년이 지날 동안 나는 그 생각을 발전시키지 못했고 그 생각을 통해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계속되는 아빠와의 갈등, 사회생활이라는 지치는 상황 속에 그냥 나를 내던지고는 수동적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나는 못한 것을 해낸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받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해 본다. 당연한 것은 없다. 옳고 그름도 없다.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 내가 만든 감옥일 뿐이다. 그냥 가뿐히 앞으로 걸어 나가면 된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의 다양성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다. 또 다른 다양성의 상징인 타인에게 친절하자. 이제 거울 속 내 모습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자기 혐오를 그만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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