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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Jul 16. 2024

좋은 무에타이 코치란 누구인가

#치앙마이 일년살기

한참 우기를 지나는 중인 치앙마이. 오후 6시가 넘어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폭우가 쏟아졌다. 어차피 한 시간 안 쪽으로 내리다 그칠 거라서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고 나도 그랬다. 다만 비 때문에 살짝 추워진 날씨가 아쉬울 뿐이었다. 땀이 갑자기 식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이런 날씨 때문인 건가, 체육관에 아프다는 사람이 많다. 나는 기관지염이었고, 나랑 비슷한 동년배인 '조'라는 친구는 독감, '푸'라는 친구는 병명은 못 들었는데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서 병원에서 주사까지 맞았다고 한다. 코치들 몇몇도 코맹맹이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다들 비 때문에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나 보다. 


몸이 성치 않은데 조금 쉬고는 꾸역꾸역 체육관에 나와서 땀을 빼는 친구들을 보며 엄청난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아마 다들 아파서 쉴 때 '아, 운동은 어떡하지? 너무 오래 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을 것이 분명하다. 조금 몸이 괜찮아지자마자 체육관에 나왔을 것이다. 이런...나 같은 인간들...너무 좋다... 


오늘은 체육관 주인장이 수업에 참여하는 날이었다. 이 체육관은 특이하게도 주인장이 체육관에 내내 상주하지 않고 일주일에 세네 번 정도 오후 6시 수업에만 얼굴을 비춘다. 체육관 사업에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사업도 하며 부인이랑 놀러 다니기도 한다. 뭐랄까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랄까.


그렇다고 그가 무에타이와 무관한 사업가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내 기준에는 꽤 실력 있는 무에타이 코치임은 분명하다. 가르치는 레벨이 다른 코치들과 큰 차이가 난다. 


무에타이 코칭의 꽃은 패트 워크 pad work라고 불리는 1:1 코칭이다. 손과 허리, 허벅지 등에 보호장구를 차고 수강생의 공격을 받아주면서 무에타이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복싱에서는 '미트를 잡아준다'라는 말을 쓴다. 복싱은 펀치만 받아주면 되어서 코치의 체력소모가 그렇게까지는 크지 않은 반면 수강생의 펀치, 킥, 무릎, 팔꿈치 공격 등을 다양하게 다 받아주어야 하는 무에타이 코치는 수강생만큼이나 체력소모가 큰 편이다. 


[pad work 예시 영상] 


초보 코치의 경우 수강생에게 어떤 공격을 지시할지 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버벅거리거나 수강생의 공격을 잘 받아내지 못해서 킥이나 펀치 공격을 해도 제대로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런 시절을 거쳐서 경력을 쌓은 코치들은 능수능란하게 수강생에게 지시를 내리고 수강생의 공격을 받아주며 수강생의 자세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알려줄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수강생이 실제 시합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게 되는데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 그 수준이 되는 코치는 헤드 코치 한 명뿐이다. 


체육관의 주인장은 실제 시합을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수준도 넘어섰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 pad work만 하는 것은 쉬운 편이다. 코치가 요구하는 공격을 기술적으로 해내면 되기 때문이다. 안무를 배우듯이 똑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몸이 익히게 되어 수월하게 그 동작을 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래서 pad work만 하다가 실제로 스파링을 하게 되면 처음에는 뭘 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코치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다가 스스로 생각을 하려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또한 pad work을 할 때 와는 달리 실제 스파링이나 나 시합에서는 상대가 끊임없이 움직인다. 내가 치기 쉽게 가만히 있어주는 경우는 절대 없다. 


일반적으로 많은 무에타이 체육관들에서는 코치들도 피곤하니까 수강생이 치기 편하게 pad를 수강생에게 갖다 대주는 식으로 pad work을 진행한다. 그게 수강생들의 자존감도 높여주고 수업이 빠르고 편하게 끝나는 지름길이다. 


이에 반해 체육관의 주인장은 항상 '치기 어렵게' pad를 잡아준다. 일단 리듬부터가 변칙적이다. 다른 코치들은 정해진 리듬이 있어서 여기에 맞춰서 치면 되니 그렇게 어렵지는 않은 편인데 주인장은 반박자 빠르거나 느리게 pad를 칠 것을 요구한다. 별다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닌데 이 리듬에 맞추는 것이 너무 어려워서 그와 pad work을 하는 것은 다른 코치들에 비해서 두 배는 힘들다. 


특히 오늘은 킥을 빠르게 찰 것을 주문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주인장이 원하는 리듬보다 반 박자 느리게 킥이 들어가서 고전했다. 


수업이 끝나고 주인장이 나에게 '너는 기술은 어느 정도 완성됐어. 그러니까 이제는 밸런스를 잡고 스피드를 높일 차례야. 그 방법을 내가 알려주는 것은 의미가 없고 네가 스스로 알아내야 해'라고 말해주는데 무슨 산에 사는 산신령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무에타이 산신령이라고 해야 할까. 


주인장의 변칙적인 리듬은 나에게는 꽤나 동기부여가 된다. 몸 편한 것만 하고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퇴사하고 치앙마이에서 1년을 보내는 것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몸과 마음은 불편해도 삶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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