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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01. 2024

금주 1년, 나는 세븐일레븐에서 맥주를 사지 않았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오늘은 금주 373일째 되는 날. 


벌써 금주 1년이 넘었다. 


치앙마이를 떠나 방콕에 들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방콕 수완나품 공항에서 나는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나에게 하나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나는 항상 여행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해외의 어느 공항에서 늘 맥주를 마셨다. 수완나품 공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기에 특별히 수완나품 공항에서 마시는 맥주는 더 많이 기억에 남았다. 지금은 수완나품 공항 철도에서 공항으로 연결되는 길목인 지하 1층에 세븐일레븐이 있고 10여 년 전에는 다른 층에 있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쨌거나 나는 여행의 마무리에 항상 수완나품 공항에서 세븐일레븐을 찾아 태국 맥주 500ml짜리 두 캔을 사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탑승장으로 향하고는 했다. 방콕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저가 비행기는 대부분 밤 12시 이후에 출발하는 비행기고 나는 야심한 시각이 되어서 한산해진 공항에서 지난 여행을 곱씹으며 맥주를 마시는 행위를 꽤나 좋아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하루 종일 피곤하게 여행하고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 맥주 한 잔이 절실했지만 나는 세븐일레븐을 그냥 지나쳐 빠르게 체크인 수속 카운터로 향했다. 


공항 지하의 푸드코트에서 쌀국수를 한 그릇 사 먹기는 했지만 맥주는 아니었다. 


늘 하던 의식이랄까 습관이랄까 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그날. 내 안에서 뭔가가 툭 하니 같이 끊어진 기분이었다. 


'나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해'라고 나를 붙잡고 있던 그 무언가다. 


이 감정과 느낌을 뭐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굉장히 괜찮은 기분인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영원히 술을 끊지 못할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나 술을 마시지 않았고 수완나품 공항 세븐일레븐으로 뛰어 들어가서 맥주를 사지도 않았다. 


썩 괜찮은 느낌이야. 


금주 1년 차의 기분은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겠다. 


금주를 1년간 한다고 세상이 뒤집히고 갑자기 내가 미녀가 되고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하는 그런 마법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지만 기분은 정말이지 썩 괜찮다.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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