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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Sep 24. 2024

어쩌다 보니 정신과에 다니는 직장인 이야기가 되어버림

#애프터 치앙마이

제목 그대로, 나의 글은 정신과에 다니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야기로 주제가 잡혀버린 것 같다. 


아주 글쓰기 주제의 축복이 끝이 없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한 지 3일 차, 신경안정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다. 


정신과에 방문한 것이 금요일 밤이고 약도 금요일 밤부터 먹기 시작했다. 회사에 출근하기 전까지 이틀정도는 약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을 복용한 지 첫 주말은 노곤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속도 많이 메스꺼웠는데 3일 차 정도가 지나가니 그 부분은 많이 적응이 된 기분이다.


크리스천 베일 주연의 '이퀼리브리엄'이나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이퀄스' 같은 SF 영화를 보면 사람들에게 약을 먹여서 감정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그려지는데 이제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약한 용량의 신경안정제로도 감정이 이 정도로 억제되는데 맘만 먹으면 더 센 약은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신경안정제 두 알을 먹는 시간은 저녁식사 시간 이후인데 약을 먹고 나면 한동안은 아무것도 할 의욕이 생기지 않고 축 늘어져 있다가 겨우 몸을 추슬러 침대로 향한다. 


평소보다 잠은 잘 자고 있다. 잠을 자고도 중간에 깨는 경우가 잦았는데 중간에 깨지 않고 잔다. 


아침에 일어나고 오후까지는 감정이 꽤나 억제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분명히 부정적인 생각을 하긴 하는데 생각이 더 폭발적으로 나아가지 않고 어떤 통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 든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기분이고 얼굴에 표정도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은 출장을 갔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장난도 치고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웃음은 억지로 지어 보인 것이며 대화도 진심으로 우러러 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습한 대화를 기계처럼 내뱉었다. 아무 말 대잔치였달까. 


저녁에 약을 먹고 그다음 날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발바닥 끝에서 찌릿, 살짝 자극이 온다. 손바닥에서도 불안한 감정이 스쳐 지나가서 '아, 약을 먹을 때가 된 건가?'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약을 먹은 지 고작 3일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런 느낌이 들다니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집은 정리를 안 해서 매우 개판이 되었는데 치워야지 생각하면서도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게으름을 넘어서서 그냥 정리의 의지가 아예 없고 정신이 멍하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 전 저녁식사 시간에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도 이것저것 배부르게 챙겨 먹는다. 아이스크림을 여러 개 먹기도 한다. 왜 먹는지 딱히 모르겠는데 일단 먹는다. 


불안해서 미쳐버리는 것보다는 적당히 나사 풀린 이런 생활이 나은 것일까?


약기운이 살짝 떨어질 때 느끼는 불안한 감정 말고는 세상이 갑자기 무채색이 되었다.


곧 심리상담과 운동도 다시 시작할 예정인데 그것들이 지금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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