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송당 Sep 28. 2024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분노

#애프터 치앙마이

두 번째 정신과 진료. 


첫 진료 후 일주일 만에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이 날은 그렇게 사람이 붐비지 않았는지 선생님과 꽤나 긴 대화를 나누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선생님은 아이컨택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도 선생님보다는 내가 대화를 이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우선은 약을 먹은 후의 증상이나 식욕, 수면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한 후에 부모님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내가 답변을 하면 약간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로 '오, 오 그래요오, 왜 그래쓰까아?'라고 다소 어색한 리액션을 한다. 


그에게 한 이야기는 뻔한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 죽어라 싸우던 부모님,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이야기, 아빠의 폭력, 엄마의 방관 등등. 


부모님은 서로 다른 방식이었지만 나에게 결국은 동일한 반응을 이끌어냈었다. 


아빠는 때리고 욕을 하면서, 엄마는 나의 죄책감을 건드리면서 결국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해라'고 강요했다. 


30대 초반이었나. 부모님 모두가 나에게 결혼에 대해 말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선생님은 딸에게 결혼을 하라고 말하고 싶으면 뭐라고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면서 답을 못했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있는지, 아니면 그전에 연애는 하고 있는지부터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나의 부모님은 그 어떤 질문도 하지 않은 채로 '결혼해라'라는 말만 했고 나는 그때 머리끝까지 화가 났던 기억이 있노라고 선생님에게 말했다. 


학창 시절에도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고 열심히 공부만 했는데 이제는 결혼과 출산까지도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고 해내야 하는 것일까. 내 인생은 있기나 한 걸까.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부모님에게 갖고 있는 감정의 근원이 분노일 수 있겠구나. 


엄청난 것을 부모님에게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다른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한다는 것 정도는 바랬던 것 같다.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거나,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내 편이 되어주거나. 


하지만 내 인생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나에게 가장 큰 공격을 가한 사람들은 사이좋게 아빠와 엄마였다. 나는 내가 힘들 때 부모님이 날 지켜주리라는 믿음이 전혀 없다. 


그들은 어느 순간 나에게 돌봄을 바랐다. 어렸을 때 오냐오냐 키웠지만 결국은 사고만 치고 다니는 남동생 대신 나에게 의지하고 싶어 했다. 


나는 응당 '이제 내가 부모님을 모실 차례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분노했다. 그들은 나에게 그 어떤 식으로든 위로가 되어준 적이 없는데 왜 이러는 거지? 나도 그들이 나에게 한 것처럼 그들이 경제적으로 무능해진 시기가 오면 경제적으로 지원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분노와는 별개로 나는 엄마에게만큼은 알 수 없는 죄책감을 갖고 있어서 엄마가 나에게 하는 가스라이팅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쭉 듣더니 나에게 '잘 살아남았네요'라고 말하며 두 가지 말을 덧붙였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삶은 부모님의 것이라는 것. 그들이 아무리 사이가 안 좋고 엄마가 불행해 보인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님이 감당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러는 나는 누가 돌봐주냐는 것이었다. 나는 연년생인 남동생이 태어난 이후로 부모님 품에 안겨본 기억이 없다. 어렸을 때 나의 기억은 항상 동생을 돌보기 위한 엄마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었다. 동생이 자라난 후에도 집안의 모든 심부름은 내가 다 했지 동생은 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에게 술 심부름을 시키기도 했는데 언젠가 법이 바뀌어서 미성년자가 술심부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어린 마음에도 속으로 기뻐했었다. 부모님은 학교에 선생님 면담을 위해 찾아온 적이 없으며 학원비 정도만 대주고 모든 것은 내가 알아서 했었다. 와중에 엄마는 동생의 학교 숙제를 챙겼다. 


모두 다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는 말인데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나마 신경안정제를 먹을 때는 감정이 증폭되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그래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하냔 말인가. 부모님을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자유롭게 살면 될까?


선생님은 자꾸 나에게 내가 왜 그렇게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얽혀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마 이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나의 치료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치료가 되긴 하는 건지, 삶의 의욕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는 한 건지 한 치 앞도 모르겠어서 진이 빠지지만 어쨌거나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낸다는 마음으로 있어보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보니 정신과에 다니는 직장인 이야기가 되어버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