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전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애프터 치앙마이
그러니까, 드디어 정신과에 방문했다.
치앙마이에서 귀국한 지 거의 한 달 만의 일이다.
귀국 후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다.
수원에 있는 친구 집에서 10일간 머물며 서울에 살 집을 알아보았고, 동시에 수원에서 강남의 회사로 일주일을 출퇴근했으며, 서울에 집을 구했고, 라섹수술을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해내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정신건강 상태를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라섹수술을 하고 추석연휴, 나는 다시 겉잡을 수 없는 불안감에 빠져들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응급실에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신과적 증상으로 응급실 방문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조금 검색을 해보니 가능해도 보호자와의 동행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 부모님과의 왕래를 끊고 있는 상황이다. 부모님에게 갑자기 연락해서 '불안하고, 죽고 싶은데 응급실에 데려가달라'라고 해도 되는 것인가.
그런 고민을 하다 어째 저째 추석 연휴는 잘 넘기는가 싶었지만 다음 일은 마트에서 터져버렸다.
마트에 갔는데 갑자기 불안감이 확 올라와서 카트의 손잡이를 꼭 잡고 15분간 아무것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빙 돈 것이다. 발 끝과 손 끝에서 불안감이 간질간질 확 올라오면서 어지러움을 느꼈다.
꽤나 불편하고 기절할 것만 같은 감정이었는데 여기서 쓰러지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 참고 또 참아서 겨우 그 상황을 이겨내고 장을 다 본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나의 모든 정신건강적 히스토리를 다 알고 있는 친구에게 털어놨고 친구의 적극적인 권유로 신경정신과에 예약을 해서 바로 어제, 첫 정신과 진료를 끝마친 참이다.
퇴근 후 늦게도 갈 수 있는 곳이 주변에 한 군데 보였는데 다행히 예약을 받아주셨다.
인생 첫 정신과 방문.
나는 은근히 최대치로 긴장을 하고 진료실로 들어섰다. 정신과는 상담소가 아니라서 불친절하다고 했는데 그런 의사들의 태도에 당황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했다.
젊은 남성 의사인 그는 나에게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렇지, 여긴 병원이고 의사인 그는 나의 증상을 묻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내가 겪는 증상에 대해서 치앙마이에 머물던 시절부터 매우 꼼꼼하게 기록을 해두었기 때문에 그에게 지금 겪는 증상 및 내가 생각하는 원인까지를 막힘없이 설명했다.
현재의 불안 상태와 20대 중반의 폭식증, 이후 이어진 알코올 의존 증상 및 치앙마이 생활에서 겪은 공황발작과 3,4회의 급격한 정신불안 증상을 연이어 설명했는데 의외로 최근 증상에 대해 설명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렸다. 자살생각이 들어서 힘들어서 응급실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한 상황을 말하는데 갑자기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으면서 증상을 더 파악하기 위해 몇 가지 추가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를테면 가족 중 우울증 환자가 있는지, 남동생과의 관계는 어떤지, 치앙마이에서 왜 공황발작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지 등등이었다.
이야기를 다 듣고 그는 고심을 하더니 나에게 불안을 낮춰주는 약을 처방하고는 한참을 약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처방전을 보니 질병코드는 F413 기타 혼합형 불안장애라는 진단이었다.
면담 전 실시한 문답검사에서도 불안이 가장 높게 나왔고 내가 느끼는 주요 증상이 죄다 불안과 관련된 증상이라 이런 판단을 내린 것 같다.
그는 두 가지 약을 처방해 주었는데, 둘 다 불안을 낮추어주는 것이 주 성분인 약이었다. 저녁에 한 번을 복용하게 되며 부작용으로는 속 메스꺼움과 식욕 감퇴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약을 털어놓고 잠을 청했다.
평소에 잠을 잘 자는 건 거의 포기한 상태인데 평소보다 미묘하게 잠을 조금은 더 잘 잔 기분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보니 속은 살짝 메스꺼워서 피곤했는데 마음은 평소와 다르게 꽤나 차분한 상태라는 것을 인지하는 중이다.
원래라면 아침부터 깨어나서 부정적인 생각으로 시작해서 그 생각을 곱씹고 있어야 했다. 신기하게 지금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래, 머릿속에 별다른 생각이 없다.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건가에 대해 매우 궁금한 상황이긴 한데 일단은 일주일치를 처방받았으니 상태를 지켜보려고 한다.
낮시간에 증상이 강하게 나타날 경우 비상시에 먹을 약도 따로 처방해 주셨는데 그것까지 먹게 되면 약에 대한 의존증상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 약에는 손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진료를 받으며 선생님에게 부모님 이야기도 간단히 꺼냈다. 폭력적인 아빠와 나에게 자신의 불안을 다 털어놓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집에 가지 않은지는 3년이 넘어가고 그동안 엄마랑은 카톡으로만 소통을 했다. 엄마는 항상 '잘 지내냐, 나 핸드폰 고장 났다.'와 같은 식으로 잘 지내는지 묻고 연이어 엄마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을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엄마가 나의 안녕에 대해 실제로 궁금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잘 지내냐는 질문은 엄마가 원하는 것을 말하기 위한 오프닝 멘트 같은 것이라고 느낀다.
이런 엄마에게 내가 잘 지내는지에 대해 말을 한 적은 없었다.
나의 상태는 거의 늘 좋지 않았고 특히나 하루 중 대부분을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며 보낸다는 말을 엄마에게 차마 꺼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이유의 큰 부분을 엄마가 차지하고 있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나에게 자신을 돌봐달라고 달려들 것이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미래의 모습의 전부다.
울면서 나에게 달려오는 엄마.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엄마.
그래서 의사 선생님에게 '나는 마흔 전에 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 상황이 나이가 들수록 심각해질 테니 그전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몇 살이 되건 상관없이 씩씩하게 살고 싶은데 엄마는 나의 옆에서 온갖 부정적인 말과 신세한탄을 하면서 내 목을 옥죄어 올 것이다. 벌써 니 나이가 마흔이 넘었구나, 나는 육십이 넘었다. 인생 헛살았다. 무섭다 등등.
이런 말을 나는 견디지 못할 것이고 그러느니 먼저 죽는 게 낫지 않을까.
다행히 약을 먹고 나니 이런 글을 써도 감정이 증폭되지 않는다.
나아질 수 있는 것일까.
최선을 다하거나 하지는 못하겠고 그저 의사 선생님의 처방을 착실하게 따라볼 생각이다.
독감에 걸려서 이비인후과에 가듯이, 마음이 아파서 정신과에 다녀왔다.
귀국을 하니 정신과에 들를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