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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ug 31. 2024

모든 것은 반드시 기필코 끝난다

#치앙마이 일년살기

이곳은 한국.


치앙마이에서의 일 년은 벌써 끝이 났고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중이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 일주일은 이러했다.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는 나와 다른 외국인 친구의 귀국을 기념 혹은 빙자한 술파티가 벌어졌고 나도 참석해서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었다. 물론 나는 금주 중이기에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탄산음료로 배를 채웠다.


그들은 나에게 '이곳은 너의 집이니 언제든 돌아오라'라는 말을 했다.


그 외에는 체육관 코치와 수강생 중 누가 누구와 사귀었는데 헤어졌다가 다시 사귀더라와 같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자주 다니던 카페 두 곳과 밥집 두 곳은 마지막으로 찾아가 평소처럼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고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넸다.


모두들 나의 앞날의 행복을 빌어주거나 돌아가서 아쉽다와 같은 말을 했다. 마지막 날 아침에 들른 어느 카페의 젊은 주인장은 나에게 빳빳한 20바트짜리 지폐 신권을 선물로 주었다. 새 지폐라서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 같았는데 그는 나에게 '네가 그동안 나를 많이 도와주어서 주는 선물이야'라는 말을 했다.


800원짜리 지폐에 눈물이 났다


내가 도와준 게 뭐가 있다고. 그저 커피를 마시고는 컵을 카운터에 가져다주었을 정도뿐인데 그게 고마웠던 건가.


어쨌거나 그가 건넨 지폐는 소중하게 책 사이에 끼워서 무사히 한국으로 가져왔다. 나는 인류애가 떨어져서 머릿속에서 경보등이 삐용삐용 울릴 때 이 지폐를 떠올리면서 인류애를 다시 충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일년을 머문 콘도의 매니저와는 한 시간 정도 대화를 하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점심식사를 하자는 말을 일주일 전 즈음 건넸지만 그것은 불편한 눈치여서 더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른 방에 머무는 한국인들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방에서 색소폰을 불어도 되냐 묻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밤에 커플끼리 싸우는 건 너무 흔한 일이라 특이한 축에도 끼지 않는다고도 했다.


참 고생이 많구나. 싶으면서 나는 부디 그녀에게 꽤나 괜찮은 손님이었길 바래봤다.


치앙마이는 내가 힘들 때마다 충전하러 가는 곳이라 아마도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일 이런 뷰를 보며 행복했다


치앙마이를 떠날 짐을 싸야 하는데 32인치 캐리어의 자물쇠 비밀번호를 까먹은 채로 자물쇠가 잠겨서 몇 시간을 끙끙대다가 결국 힘으로 자물쇠를 뜯어내버렸다.


이걸 새로 살까 하다가 캐리어용 자물쇠만 따로 살 수 있어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자물쇠만 주문해서 어째 저째 캐리어를 새로 사지 않고 한국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아니 그런데 이 캐리어는 지퍼까지 고장이 난 것이라. 공항에서 짐을 정리하다가 지퍼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서 한참을 진땀을 뺐지만 다시 지퍼를 잠가서 캐리어를 수화물로 보낼 수 있었다.


평화롭게 떠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마지막에 생각하지도 못한 난관이었다.


하지만 그 난관을 또 다 깨부순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그것뿐이겠는가.


치앙마이를 떠나 방콕에서 3일을 지내는 데도 쉽지 않은 일의 연속이었다.


근교 아유타야를 다녀오기 위해 기차표를 끊고 오토바이를 빌리는 일. 마지막 날 12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새벽 2시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일 같은 것들이 전부 다 무척이나 피곤한 일이었다.


모든 단계의 마지막 하나하나까지 그 어떤 실패도 없이 다 끝마치고 나는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적응의 시간이 좀 필요할 줄 알았건만 또 그렇지는 않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의 몸과 마음은 태국 모드에 있다가 순식간에 한국 모드로 전환이 되었다. 태국에서는 2천 원짜리 커피를 마시다 한국에서 친구를 만날 때는 5천 원짜리 커피를 마셨고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20만 원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금방 썼다.


지금의 나는 알게 모르게 차분하고 알게 모르게 불안하다.


차분한 까닭은 이제는 너무도 확실히 '모든 것은 반드시 기필코 끝난다'라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며 불안한 까닭은 그럼에도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잊었기 때문이다.


무슨 짓거리를 해도 모든 것은 끝난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 출근할 새로운 회사에 대해서도 두려움 같은 것은 없다. 주위에서 뭔 지랄을 해도 티베트 여우 같은 눈빛을 하고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든 되겠지 강남 생활


인생에 대한 의욕이 불타오르지 않는 건에 대해서는, 일단은 매일매일 떡볶이를 먹으며 견뎌보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작가님이 그래도 떡볶이는 먹고 싶어 했다는 내용의 책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렇다. 건강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서 피하는 음식이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 매일 눈에 보일 때마다 사 먹고 있는데 떡볶이를 먹는 순간만큼은 행복해서 '아, 한국에 돌아온 것도, 지금을 살아있는 것도 참 다행이다'라는 행복감을 느낀다.


모든 것이 기필코 다 끝나는 것처럼 삶의 우울함을 느끼는 이 감정도 언젠가는 끝날 수 있는 거겠지. 그것 하나에 기대를 걸어보는 중이지만 신경정신과를 찾아서 진료를 받아볼 참이기도 하다.


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의 치앙마이 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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