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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May 18. 2024

항상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왔어요

#치앙마이 일년살기

전 항상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영화에 나온 대사라고 한다. 나는 이 영화가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손꼽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이 대사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 속 등장인물들이 이 대사를 여러 번 언급한다.


갑자기 이 대사가 떠오른 까닭은 내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다. 치앙마이에서의 나는 굳이 친구를 만들려 하지 않고 홀로 조용히 지내는 중이다. 우울함이 깊기 때문일지, 아니면 사람에 너무 치여서 회복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인지 지금의 나는 타인을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혹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치앙마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안면을 트는' 정도의 관계 정도만 유지하고 있다.


체육관에 가서는 조용히 운동만 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은 관광지에서 비껴 난 곳에 위치해서 외국인보다는 태국인 수강생의 비율이 더 많다. 치앙마이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라 나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편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지만 내가 느끼는 대체적인 성향이 그렇고 치앙마이 사람들도 인정했다)


체육관에서 한국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께서는 나에게 너무 적극적으로 가까워지고자 하는 시그널을 주셨다. 당시에는 그럴 여력이 없기도 했고 그 모습에서 다소 무례함을 느끼기도 했어서 그분의 요청을 모조리 다 차단했었다. 벌써 거의 네다섯 달 전의 일인데 그때는 이런 거절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정신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할 수 있는 체육관의 태국인들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다. 몇 마디 대화 정도만 나누고 '안녕~'하고  헤어지니 전혀 부담스러운 것이 없었다.


이 체육관에 어언 반년 넘게 다니는 중이고 그러다 보니 적당한 거리를 두던 관계에 아주 약간의 미묘한 변화가 생기는 것이 눈에 보인다.


별건 아니고, 무뚝뚝하게 운동이나 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태국 사람들이 늘어났다.


"싸왔디 쏭(내가 송씨라서 이름을 쏭으로 알려줬다), 싸바이디 마이?"

안녕 쏭, 오늘은 어때??


"느아이 마이?"

피곤해?


이런 대화가 조금씩 늘어나는 중이고, 영어를 아예 못하는 친구들도 날 보면 다가와서 주먹을 맞대는 식의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혹은 대화 없이도 바디 랭귀지를 써가며 장난을 거는 것은 다반사이기도 하다.


영어를 좀 할 줄 아는 친구 중에서는 나의 스케줄을 은근히 다 꿰고 있는 친구도 있다. 내가 언제 체육관에 나오고 안 나왔는지까지도 다 알고 있었다.


코치들을 제외하고는 6개월 전에는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였단 말이지.


귀엽다 이 사람들. 은근히 아닌 척 나에게 신경을 써주는 느낌이랄까.


이 정도의 인간과의 접촉까지는(?!) 이제는 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게 되어서 체육관에서 나누는 소소한 대화를 즐기고 더 나아가서는 기다리게 되기까지 했다.


난 싸가지가 싹퉁바가지인 인간인데. 이런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고 나의 기분을 좋게 해 주다니.


그래서 영화의 대사가 떠올랐다. 나도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는구나. 그 덕을 보는구나.


아주 소소한 일화인데 마음이 따뜻해졌다.


물론 마음만 따뜻했고 운동은 너무 힘들어서 땀을 비 오듯 흘렸지만. 코치들이 오늘따라 얄짤없이 운동을 시키더라고.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동네 뒷산이 보이는 것도 기분이 매우 좋다
어제 망고 하나 들어간 스무디 50바트 줬는데 오늘 망고 2kg에 40바트를 줬다 하...하하하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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