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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Apr 03. 2024

세상 쓸모없는 무에타이

#치앙마이 일년살기

온몸이 아프고 다리는 멍투성이다.


오늘도 아침 일찍 기상하는 것에는 실패하고 9시 넘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제길, 또 늦잠이네'를 중얼거렸다. 뭐, 일을 하는 중은 아니니 늦잠이야 별 상관없지만 이게 일찍 '못 일어나는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었다.


일찍 못 일어나는 이유는 하루에 한 시간 반 정도 진행하는 무에타이 수업이 힘들기 때문이며 최근에는 나보다 18세나 어린 친구와 스파링을 해주느라 평소보다 두 배는 힘들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4천 명 정도는 되는 화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이 19세 태국인 여성 친구는 무에타이 시합에 나가겠다고 한다. 훈련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경험 삼아서 해보고 싶다나. 그래서 코치들이 이 친구에게 빡세게 훈련을 시키면 또 은근히 궁시렁거리는 게 보여서 재미있기도 하다. (그렇게 진심으로 훈련하는 것은 아니어서 시합에 안 나갈 확률도 있어 보인다)


내가 다니는 체육관에서 이 친구에 맞춰서 스파링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요즘 내가 전담으로 스파링을 해 주는 중이다. 아직 남성들과 스파링을 하기에는 이 친구는 너무 초보여서 그나마 같은 여성인 내가 상대해 주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여성은 스파링이 무엇인지 아직 제대로 인지를 하지 못하여 100% 풀파워로 나에게 킥을 날린다. 모름지기 스파링이라 하면 힘을 빼고 공격이나 방어를 연습하는 목적인데 이 친구는 얼굴에 살기를 띄우고 나를 죽이겠다는 식으로 달려든다. 하하하하... 덕분에 보호장비를 착용했음에도 다리는 멍투성이다. 다행인 것은 이 친구가 초보라는 것이어서 간혹 한 두 대 맞으면 아프긴 하지만 나름 상대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 친구와 스파링을 하기 전에는 주로 남성들과 스파링을 했는데 그때는 내가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가는 경우여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남성과 여성의 근력 차이는 완연한 것이고 나는 굳이 이 차이를 이겨먹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갖고 있지도 않다. 위험한 순간이 생겨서 내가 남성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열심히 배운 무에타이를 바탕으로 전력질주해서 도망갈 것이다. 이 체육관에서 스파링을 처음 시작한 5개월 전 즈음에는 공격을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해서 스파링을 하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꾸역꾸역 조금이라도 스파링을 계속하다 보니 요즘은 피하기도 잘 피하고 간혹 한 두 번은 공격에 성공하기도 한다.

 

그렇게 맨날 코치나 남성 회원들에게 쳐 맞다가(?) 여성인 이 친구와 스파링을 하니 왜 이리 마음이 편한지. 심지어는 상대방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는 수준이라 속으로는 환호를 부르며 재미있게 스파링을 하는 중이다. 물론 나에게 공격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는 상대방 친구는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이 실시간으로 눈에 보인다.


타이어에 왼발을 넣고 붙어서 근접전 연습을 하는 중. 태국 무에타이도 요즘은 꽤나 체계적으로 훈련한다.


스파링에서는 내가 이 친구에게 우위를 점하지만 이 나이차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라. 스파링을 하고도 이 친구는 쌩쌩한 반면 나는 앓아눕는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더 힘들게 운동을 했어도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었다. 코로나 시기에 운동을 반년 정도 쉬었고 그 사이에 회사 스트레스를 다 받으며 잦은 음주로 몸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이 시기를 거치며 나이마저 30대 후반으로 접어서니 체력이라는 것이 도통 좋아지지 않는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고 운동하고 식단을 해도 37세가 지금의 나에게는 크게 효과가 없는 느낌이다.


이대로 나는 나의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무에타이 말고 다른 운동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긴 하지만 내가 치앙마이에 머무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그 누구도 아닌 내 신체의 노화라는 녀석과 상대해 볼 생각이다.


선수도 아니고, 무에타이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는 세상 쓸데없는 짓을 이곳 치앙마이에서 하는 중이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나는 간혹 불안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쾌감을 느낀다. 세상 쓸데없고 쓸모없는 무에타이를 열심히 하는 내 자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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