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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당 Oct 31. 2023

치앙마이에서 커피만큼은 걱정할 필요 없지

#치앙마이 일년살기

치앙마이를 여행하면서 항상 놀라는 것은 카페가 없을 것 같은 곳에도 카페가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커피 맛도 훌륭하다.


오늘은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려놓고 구글지도에 저장만 해놓고 아직 안 가본 카페를 찾아 나섰다. 숙소에서 오토바이로 10분쯤 걸리는 거리.


Green Roasters 


유튜브나 블로그에 소개된 카페는 사각형 화면 속에 담겨있기에 카페 가는 길은 어떤지 카페 주변 모습은 어떤지 알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카페도 영상 속에서는 그저 예쁘게만 보였었는데 실제로 가보니 이런 곳에 카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일반 주택가였다. 치앙마이 관광의 중심인 올드타운이나 님만해민이 아닌 동네 토박이들이 살아가는 일반적인 동네의 모습.


카페는 가정집 1층을 개조하여 만든 것 같은 모습으로 동남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가게의 모습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게들은 거의 다 이런 모습이어서 카페에 들어서면서부터 왜인지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카페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위치에 카페가 아닌 것처럼 들어서 있는 카페


중년의 아저씨 바리스타님이 운영하는 이곳은 심지어 로스팅까지 하는 곳이었고 가게의 시그니쳐인 '하우스 블렌드' 원두의 커피를 단돈 55바트에 마실 수 있었다. 요즘 치앙마이 물가도 많이 올랐고 아메리카노 한 잔에 100바트가 넘는 카페도 많은데 그래도 동네 상권은 여전히 아메리카노 가격을 40~50바트 선에서 지켜주고 있다. 한국에서 100바트, 4천 원 하는 커피야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게 마시지만 태국 물가에서 100바트 커피는 태국인들도 비싸다고 뭐라고 한다.


그렇게 받아 든 55바트짜리 커피는 내 기대를 정확히 충족시켰다. 한국에서야 2천 원대 커피는 저가 커피라고 해서 맛이 없는 것이 보통인데 치앙마이에서는 2천 원대에 스페셜티 커피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산미가 있는 커피를 즐기는 편인데 오늘 마신 커피는 적당히 산미가 있어서 커피의 맛이 잘 잡혀있었다. 로스팅은 아마도 미디엄 로스팅 정도가 아닐까.


치앙마이에 10년 전에 왔을 때는 커피를 마실 때 원두의 로스팅 정도를 묻는 가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간 곳들은 그랬다) 요즘에는 방문하는 대부분의 카페에서 주문 시 원두의 로스팅 정도를 고르라고 하니 치앙마이의 커피 문화도 뭔가 발전했구나, 그런 생각이다. 미디엄과 다크 로스팅 중에서 고르라는 집이 많고 간혹 라이트 로스팅을 고를 수 있는 곳도 있다. 다크 로스팅 = 산미 없는 진한 맛 / 미디엄 로스팅 = 약간의 산미 / 라이트 로스팅 = 강한 산미 이렇게 구분하면 편하다.


커피를 받아 들고 잠시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니 전형적인 태국 주택가의 모습이다. 하늘은 맑고 나무도 푸르른데 그 풍경을 어지러운 전선이 방해하고 카페 앞으로는 계속 차나 오토바이가 시끄럽게 지나간다.


정말 엉망진창이야.


이런 생각을 했지만 그 엉망진창인 모습 때문에 계속 태국을 찾는 것을 알기에 그냥 이 풍경을 즐겼다.


카페 앞 풍경
간판에 쓰인 글자는 태국어 발음 그대로 '까퍠', 커피라는 의미다. 이건 내가 읽을 줄 아는 글자여서 속으로 환호했다.


태국분들이 본다면 기분 상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태국은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도시의 모습이 전혀 정돈되어 있지 않다. 거리 한 구석에는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있고 그 옆에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대가족이 살고 그 앞에는 이런 카페가 있고 또 그 건너편은 고급 콘도가 들어서있다. 되는대로 이것 저것 가져다 끼워 맞춘 모습이다.


이 어지러운 모습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이게 더 사람 사는 세상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


정돈됨 = 좋음, 이런 공식은 없지 않은가.


계획 없이 이거 하다가 저거 하는 게 사람 사는 모습 아닌가.


아, 다시 하고 싶었던 말로 돌아가서 치앙마이에서는 어느 지역에 있건 커피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치앙마이뿐만 아니라 태국 전역이 그럴 것이다. 카페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도 거의 절대적으로 카페를 찾을 수 있고 대부분의 경우 맛도 평균 이상이다. (맛없는 카페도 종종 있으니 구글평점을 확인하고 가시길)


치앙마이 주변은 커피 산지이기 때문에 신선한 커피 원두가 풍부하며 커피 장사가 돈이 되기 때문에 커피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커피 제조의 솜씨도 뛰어난 편이다.


치앙마이에는 인스타 갬성의 성수동이나 홍대스러운 카페가 점점 많이 생기고 있고 그런 곳들이 관광객의 발길을 끌지만 오늘 가본 이런 카페가 진짜 태국의 감성이고 나중에 돌아보면 더 기억에 남는다.


수면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커피를 끊으려고 했는데 내가 치앙마이에 있는 이유로 그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커피 문화가 살아 숨쉬는 치앙마이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는 건 너무 슬픈 일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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